친교실

제목 성서학당3- 땅의 주인은 하나님꺼~~ 2009년 09월 25일
작성자 목요성서학당

세 번째 강의의 핵심어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성서의 핵심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 것이라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성서의 예화, 반대로 행하고 있는 현재 교회 모습을 말씀해 주셨어요...

 

성서가 끊임없이 가르치는 것은 히브리 하나님이다.

약자들의 권익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스라엘 평등 공동체가 기반으로 삼는것이 ‘아비의 집’.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듯이..

여기에는 생산과 분배와 소비가 이 속에서 다 이루어졌다.

자급자족함.

아비집을 기본단위로 해서 성경에는 땅을 분배함.

나누어진 토지를 가르켜서 유산 혹은 기업이라고 함.

땅의 주인은 하나님. 이것이 성서의 핵심이다.

땅은 사고 팔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다.

무엇때문일까? 왜 땅이 기본일까?

그것은 만약 땅을 잃게 되면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잃는 것이다. 스스로 나를 돌볼수 없게 된다. 빚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땅은 사고 팔고 할 수 없다.

평등공동체 꿈이 땅을 사고 팔고 함으로 깨질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나봇의 포도원 예화를 들을 수 있다.

아합왕이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 들인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이 좋아 보였다. 아합은 내가 다른 땅을 줄테니 그 땅을 달라고 한다. 이것은 왕이라도 뺏을 수 없기에 바꾸자고 한것이다.

나봇은 내 조상들로부터 받은 땅이니 내 줄 수 없다고 한다.

유산과 기업인 땅은 왕조차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였다.

아합왕은 나중에 싸매고 드러누움. 이세벨이 당신이 왕이 맞냐? 나봇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인 세워서 나봇을 죽임. 죽은 사람의 토지는 왕에게 귀속 될 수 있기에 아합이 그 땅을 빼앗는다. 나중에 아합과 이세벨도 죽음.

땅의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 보여 주심.

 

신 19;14

‘당신들은 주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한 땅에서 이미 조상이 그어 놓은 당신들 이웃읙 경계선을 옮기지 마십시오.’

 

유산으로 분배 받았던 땅의 경계선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성서 도처에 등장한다.

평등 공동체에서는 남의 땅을 빼앗는 행위가 야훼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민36;7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유산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지는 일이 없어야 이스라엘 자손이 제각기 자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파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오.’

 

지파의 유산이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당시에는 형이 죽으면 형수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수혼제이다.

수혼제를 행한 이유는 재산이 지파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유다와 다말사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토지와 연관이 있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유다가 다말에게 ‘너의 의가 나의 의보다 낫다.’

라고 이야기 한것이 후손을 이어주려고 하는 뜻도 있지만 더 큰것은 토지의경계를 옮기지 말고 했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토지를 지키려고 했던 것을 더 의로 여겼던 것을 볼 수 있다.

 

평등공동체가 지속되었나? 깨짐.

힘있는 사람들로 인해.. 자기들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게 있어야 하기에 이것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경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다.

불평등을 향해 끌고가는 왕의 전통과 평등공동체를 이루려는 예언자 전통.

왕이 만들어가는 흐름속에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예언자.

예언자 정신의 뿌리는 평등 공동체를 이루고자하는 출애굽 정신임.

 

우리나라는 예언자적 역할을 하고 있나?

한국교회가 전승해야 할것이 출애굽 정신과 예언자 전통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잉여자금을 가지고 땅을 산다.

건물을 사서 값이 오르면 기다렸다 다른 땅을 사고 규모를 불린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큰소리 친다.

이것은 교회가 절대로 해서는 안될일이다.

살기위해 사는 집이 아닌 투기를 위한것은 안된다.

상위 20%가 재화 80%를 누리고 있다. 상위 20%가 자꾸 땅을 사서 되팔수록 밑에 있는 사람은 허덕인다. 결국은 그사람들의 것을 빼앗은 격이 된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을 누가 독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마땅히 골고루 돌아가야 할 것을 투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앞에서 옳지 않다.

하나님의 법 앞에서 내가 정당한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땅에 대해 어떤가?

이숫자를 보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083, 819..... 이것은 개인이 집을 사유한 통계이다.

일만 가구가 살 수 있는 집을 30명이 보유하고 있다.

2005년기준 1,6명이 4채 이상의 주택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가구수보다 집들이 훨씬 많다.

1970년대 78,2%, 2002년 100%넘음, 2008년 109,8%.

집이 남아도는데 집값이 오르고 있다.

집없는 서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은 절반이 자기집이 없다. 20만 세대가 전세로 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살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산 집값이 올랐다고 하는 것은 집 없는 사람들을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사람들의 고통을 잉여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재산을 목적으로 땅투기하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예수포럼강사로 오신 홍세화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학습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학습(學習)에서 습자를 유의하여 보라 날개우자에 백자인데 이것은 새가 나는 연습을 해야 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배우는 것과 익히는 것이 다르다는 것. 학과 습이 분리 되어 있다.

 

 

예산에서 <신경림>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봉우리도 있고 바위너설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갈대밭도 있다

품안에는 산짐승도 살게 하고 또

머리칼 솔에는 갖가지 새도 기른다

어깨에 겨드랑이에 산꽃을 피우는가 하면

등과 엉덩이에는 이끼도 돋게 하고

가슴팍이며 뱃속에는 금과 은 같은

소중한 것을 감추어 두기도 한다.

아무리 낮은 산도 알 건 다 알아서

비바람 치는 날은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햇볕 따스하면 가슴 활짝 펴고

진종일 해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도둑떼들 모여와 함부로 산을 짓밟으면

분노로 몸을 치떨 줄도 알고

때아닌 횡액 닥쳐

산 한모퉁이 무너져나가면

꺼이꺼이 땅에 엎으러져 울줄도 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근심어린 눈으로

사람들 사는 꼴 굽어보기도 하고

동네 경사에는 덩달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출 줄도 안다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있을 것은 있고 갖출 것은 갖추었다

알 것은 아록 볼 것은 다 본다

 

감상) 산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잘난사람, 못난 사람..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하찮다고 여기는 삶이 다 갖추었다.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산속에 투영되고 있다.

세상에서 강자들이 편리한 세상, 그들만이 존재이유를 갖고 있는 세상이 잘못된 세상이다.

 

 

 

영혼의 온유함을 주십시오 <랙스 채프만>

 

주님, 저에게는 마음 아픈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만사에 부족한 것이 마음 아픕니다.

때로 안이한 평화, 안이한 행복에 머물러 있다가

결국은 중심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마음 아픕니다.

당신께 아픈 상처를 입혀 드린것도 마음 아픕니다.

오, 주님. 당신만이 저로 하여금

장차 저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당신께서 삶으로 분명히 보여주신

그 영혼의 온유함을 저에게 주십시오.

진실을 찾아나가는,

인내로 참고 견디는,

비난당할 때 평정을 지키는,

남을 위하여 자기를 뒤로 물리는,

안으로 숙련된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는,

그 영혼의 온유함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의 냉정함을 털어내 비워주십시오.

저의 편파적인 정의에 만족함을 털어내 비워주십시오.

생명이 있는 모든곳에

공의가 편만할 필요를 알게 될 때까지

주님, 저를 털어내 비워주십시오.

 

남들이 느끼는 것을 저도 느끼도록

주님, 저에게 민감함을 주십시오.

남들의 자리에 서볼 수 있도록

주님, 저에게 상상력을 주십시오.

예수를 통하여, 예수안에서,

사람되는것이 어떤것인줄 아셨던

당신의 자비는 실로 위대하십니다.

그 자비를 저도 나눠 가지게 도와주십시오.

 

 

-시를 나누고 부연 설명해 주신것을 메모합니다. 은혜가 되어서요...

공동체에서 하지 말아야 할것중 하나가 충고하지 말아야 한다.

충고하게 되면 영혼이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내가 이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구나할 때 상대방 내면의 영혼이 말을 한다. 먼저 상대방과 신뢰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다음 바른 말을 하게 되면 그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고치려고 할때는 안된다.

 

-영성이 깊은 것은 공감의 능력이 얼마나 커졌나로 드러난다.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롬 12장에서 바울은 비천한 자들과 사귀고... 라고 되어있다. 사회적으로 보잘것 없는 삶의 자리에 가서 친밀감을 가지고 가서 사귀라.

기독교인들이 공감의 능력이 커질려면 고난의 현장에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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