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수요예배 - 이사야 성경공부 1 2009년 09월 17일
작성자 장성호

안녕하세요, 장성호입니다.

지난 9월 9일 수요예배에서 공부한 이사야서에 대해 개인적으로 요약한 글을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정리하고자 적은건데 혹시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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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제1성서)에 있는 "이사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탄생의 예고가 담긴 성서, 회계를 촉구했던 예언자, 고난 받는 종의 예언이 담긴 성서등...단편적인 내용들이 떠오를 것이다. 무려 66장의 분량을 자랑하는 이사야서는 고대 히브리의 예언서 가운데 에베레스트라 일컫는 것으로, 히브리 예언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책이다. 이사야서는 당시의 가장 높은 이상과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고 불리며 훗날 많은 예언자들이 이에 영향을 받고, 또한 성서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언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누가 복음서 4장에서 예수께서는 본인의 처음 사역의 출발선에서 본인의 목회철학을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사 61:1 이하)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이는 예수께서도 이사야서에 많은 영향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사야서는 당시에 단연 돋보이는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고 있다.

 

총 66장으로 되어 있는 이사야는 일반적으로 3인(혹은 그룹)이상이 대략 200~300년 간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크게 신/구약 구분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1장~39장까지는 '제1이사야'라고 하며, 주전 8세기에 활동한 내용이고, 40장~55장까지는 '제2이사야'라고 해서, 장소적 배경이 예루살렘이 아닌 바벨론 이고 주전 587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무렵에 쓰인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56장~66장까지는 '제3이사야'라고 하며 장소적 배경은 다시 예루살렘인데, 이 시기에는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에 적은 내용이라 그런지 성전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져 있지만 예언서 제목을 "이사야"라고 한 것은 뛰어난 한 사람의 이름 밑에 자신의 저작들을 집어넣는 당시의 상황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성서라 하는 신약의 바울 서신들도 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사야서 외에 다른 히브리 예언서 모두 다 이 기간에 걸쳐있기 때문에 이사야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예언서도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사야서는 시간 순으로 기술된 성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성서를 보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이사야서 각각의 대략적인 시대적 흐름과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자.

 

제1이사야(1장~39장)를 읽다 보면 이사야는 농촌출신의 아모스 선지자와는 달리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왕족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는 예루살렘(남유다)의 외교정책의 세세한 것까지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성인 시온성과 다윗 왕조를 강조하곤 한다. 멸망을 이야기하다가 회복을 이야기 할 때 꼭 이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이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모두 건재한 BC742년경 우시야 왕이 죽고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외교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고대 근동(이스라엘, 블레셋, 시리아 등…)의 패권을 잡고 있는 나라는 아시리아(앗수르)였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도 이 앗수르를 늘 염두에 두고 예언을 하게 된다. 앗수르의 압박 속에서 과연 남 유다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길로 가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한지를 이사야는 늘 고민하였던 것이다.

 

이사아 1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서 왕의 이름이 총 4명 언급되어 있다. 구약(제1성서)을 보신다면 꽤나 익숙한 이름인 히스기야 왕을 빼고 웃시야 왕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장수한 왕이며 남유다에 번영을 갖고 온 왕이다. 영토도 넓히고 군사력도 키웠으며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하게 했다. 허나 하나님께 제사를 제사장대신 본인이 주관하려다가 결국은 문둥병에 걸려 죽게 된다. 아하스 왕은 이사야와는 대화를 주로 나누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단순히 예언자 이상의 이사야의 높은 신분을 짐작할 수 있다 BC735~715의 20여년간 통치를 했는데, 이때는 앗수르가 한창 팽창할 시기였다. 신흥강대국인 앗시리아의 팽창정책에 맞서기 위해서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은 동맹을 맺는다.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앗시리아를 막아낼 수 없었기에 그들은 유다도 그 동맹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 남 유다가 거절하자 시리아-이스라엘 동맹군은 유다를 침공한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왕과 백성의 마음은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리게되고 그때 예언자 이사야가 아들 스할야숩을 데리고 아하스 임금 앞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때의 말씀이 그 유명한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다. 이 말씀의 전후를 살피고 보자면 이 말씀은 동정녀 탄생 교리에 따라 처녀는 마리아이고 임마누엘을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나라가 포위된 상황과도 같은 어려운 시기에서도 태어나는 아기의 탄생과 같이 "일상적인 일"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아기의 존재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징표라는 것이다.

 

만일 내가 아하스왕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사야가 시키는대로 조약을 맺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보기와는 달리 쉬운 내용이 절대로 아니다. 아하스왕은 "말씀을 우선 순위에 둔 예언자"와 "실제적인 국정운영"의 기로에서 결국 앗수르와 조약을 맺게 된다. 이사야의 말을 무시하고 당시의 인근나라를 침략해서 굴복시키는 앗수르 왕인 티그라필레스 3세의 막강함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매료되어 앗수르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BC722년에 조공거부로 앗수르에 저항하다가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다.

 

BC715년에 아하스왕이 죽고, 히스기야 왕이 등극하게 되는데,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하게 되고 예배를 다시 굳건하게 세운다. 그 또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다운 것에 대해 고민한 왕이며 이를 옆에서 가장 도운 이가 바로 이사야이다. 당시 정서는 반 앗수르 정서가 흐르게 되고, 전통적인 후원국인 이집트가 북으로 올라오려고 하는 바람에 위로는 앗수르 아래로는 이집트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하스왕에 이어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는히스기야왕에게 이사야는 다시 어느쪽에도 편들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게 된다. 히스기야는 반 앗수르 정서가 주변국에 흐를때에 처음에는 그 정책에 가담하지 않았었지만 앗수르 왕이 바뀌면서 주변정세가 뒤숭숭할때 히스기야는 반 앗수르 정책에 가담하게 된다. 해서 앗수르의 노여움을 받아 (당시 기록으로는) 18만 대군이 쳐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당연히 멸망할 줄 알았던 그 상황에서 앗수르 군대들은 물러나게 된다. 히스기야왕에게 생긴 죽을 병은 다름아닌 종기였다. 근데 이사야가 무화과를 환부에 붙여서 그의 병을 고쳐주고, 히스기야왕은 그로부터 15년을 더 살게 된다. 그런데 이때 바빌론에서 사절단을 보내오게 되는데 히스기야왕은 사절단에게 예루살렘 투어를 시켜주게 된다. 군대, 제사, 내부 모두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 사실이 이사야에게 알려지자 그는 대노하여 예루살렘이 결국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100년 후 바빌론이 패권국가가 되서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이사야서는 특히나 제1이사야(1장~39장)의 경우는 약 400여년 간의 편집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시간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하스왕과 히스기야왕의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알아야 이사야서 말씀이 더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왜 이사야는 어찌보면 참 속없는 이야기 일 수 있는 말들을 아하스왕과 히스기야왕에게 해야 했을까? 이사야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길래 외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높은 이상과 가치에 따르는 말을 해야 했을까? 그 또한 높은 신분에 당시 정세와 주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만 의지하라"라는 말을 해야만 했을까?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이 모이고, 국경 너머에는 굶주린 맹수처럼 강대국들이 판칠때, 이로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처럼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세우셨다. 그는 바보처럼 하나님만을 외치고 바라봐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이것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우리는 바로 이 속에 깃든 신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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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미(09 09-23 09:09)
와~우 좋은데요... 예언서라 읽을때 힘들었는데.. 이것을 알고 나중에 읽으면 꽤 수월하고 이해가 잘 될것 같아요... 감사해요.. 늠름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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