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파리 산책을 갔다가 '세 자매'를 보고서 2009년 09월 14일
작성자 권혁신

주일 오후 교회에서 특강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면서 강의와 저작 활동을 하고 계시는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님의 강의로...

이번에 박사님께서 쓰신 책은 '도시 걷기의 인문학 - 파리를 생각한다'란 책으로 산책을 통해 보는 파리 찬가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더군요. 물론 아직 제대로 읽지 않고... 감히 평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특강 시작 전에 슥 훓어보고, 또 50분 정도 졸면서 강의를 들은바로는 그렇더라고요.

 

파리를 생각한다

 

사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집회 전까지 1시간에서 30분 정도의 시간, 청년부가 아니고 따로 활동하는 부서도 없는 저로서는 참 애매한 시간입니다만 이날은 이 책을 포함하여 도합 세 권의 책을 훓어보며 그럭저럭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파리에 관련된 영화들(얼마전 '사랑해 파리'란 영화도 개봉했죠)이나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 파리에 대한 호기심이 절로 일겠습니다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다지 파리에 관심이 없었거든요.(프랑스 영화를 그닥 안 좋아해서) 그런데 이 책을 대충이나마 읽고 박사님께 '짧게 여행 갈 경우 파리의 어디에 가면 좋을까요'라는 우문을 했다가 상세한 답변을 들은 후로 파리에 한번 가봐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대충이라도) 읽으면 파리가 참 땡기거든요. 그것도 우리가 사는 서울과 비교해서... 전통과 역사, 예술이 살아 있는 도시기에.

그렇지만 강연이 끝난 후 외국 생활 오래 하고, 외국인 친구들 많은 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 녀석이 말하길... 유럽 인들은 파리 안 좋아한다고... 지저분해서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는 올 여름에 친구가 거기 살아서 바르셀로나 갈 계획이었는데 이사하고 직장 구하느라 못 갔다. 그러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귀 얇은 저의 베스트 위시 유럽 여행지는 바르셀로나 내지 스페인으로 변동됐습니다만(바르셀로나 가면 축구도 볼 수 있거든요~!) 어차피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비행 시간이 너무 길어 갈 엄두도 안 가는 유럽이라서 당분간 갈 리가 없긴 합니다. ㅎㅎㅎ  그래도 유럽 가면 파리의 17, 18, 19구역은 꼭 한 번 걸어봐야겠다란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대로를 헤매는 게 저의 취미라서(타고난 방향치에 길치, 지도치라서 본의 아니게 그렇습니다)...자유 여행으로 가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될 것입니다만.

 

그렇게 특강을 마치고...

박사님의 사인을 책에 받고, 파리에 가면 꼭 연락드리겠다는 말씀을 하고서는 명동으로 갔습니다.

명동에서는 몇 차례 헤맨 악몽이 있어서... 미리 인터넷으로 약도를 확인하고 극장으로 향했죠.

이미 시간이 꽤 지체된 상황이라 같이 보기로 한 분들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관람석으로 향했습니다.

음... 그런데 자리가 3층인 데다가 맨 위라서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뭐 그 덕에 싼 값에 본 거지만 ㅎㅎ)

그래서 방법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빈 자리로 자리를 옮기고... 게다가 측면에 있는 테라스 석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허리우드 영화 보면 뮤지컬이나 음악회 등을 볼 때 귀족 등이 보는 로얄석이... 비어 있더군요. 그래서 오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라며... 우측 측면석에 앉았습니다. (전 영화나 콘서트도 측면석을 선호합니다. 삐딱하고 음습한 성격 때문인가 봅니다 ㅎㅎㅎ)기대대로 배우들 얼굴이 잘 보이더군요~ 그런데 연극을 보다 보니 우측 측면석은 무대의 우측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좌측으로 옮기려다가 안내원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공연 중에는 좀 자제해 달라고 ㅎㅎㅎ 그래서 인터미션 시간에 옮겼습니다.

 

 

 

연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로조로프가의 세 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는 모스크바에서 자란 교양 있는 여성들이지만 아버지의 이직으로 지방 도시로 온 후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모스크바를 동경한다. 맏딸인 올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마샤는 남편이 있지만 모스크바에서 온 군인 베르쉬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막내 이리나는 모스크바에 가고 싶은 마음에 사랑하지 않는 뚜젠바흐와 약혼을 하지만, 뚜젠바흐에게 그녀를 남몰래 사랑하는 솔료늬이가 결투를 신청 한다. 세 자매의 형제인 안드레이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속물스러운 부인 나따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윽고 마을에서 군대가 떠나고 세 자매는 사랑과 꿈을 잃지만 다시금 삶에 의지를 되새긴다.

 

 


 

이건 홈페이지에서 퍼온 거고요. 연극 참 재미있게 봤는데요.

이 연극에 몰입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화되어 봤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우리 집 상황이랑 좀 비슷하더라고요.

우리 집도 1남 3녀이고... 누나들이 결혼 문제로 고민하거나 포기했고... 저도 결혼 문제로 이래저래 어렵고~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물론 우리 집은 그렇게 잘난 집안도 아니고... 부유하지도 않습니다만. ㅎㅎㅎ

그래도 누나들이 처한 상황이랑 극중 세 자매가 처한 상황이 조금 유사해서 안타까움이 느껴졌고...

게다가 극중에 등장하는 솔료늬이란 사람이 꼭 저를 보는 것만 같아서 ㅎㅎㅎ 속상하더라고요~

이름부터가 쓸쓸하고 고독할 거 같지 않습니까? 솔료늬이~ ㅎㅎㅎ

극중 솔료늬이는 분위기 깨는 독설 잘하고... 퉁명스럽고... 질투심 강하고... 센치한 척하고...캐주얼한 척하죠.

하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여리고 외로운 사람이죠. 그래서 1:1로 대화할 때는 마음을 열고 자기 본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뭐 제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ㅎㅎ)

 

게다가 술 마시고 좋아하는 여자한테 술김에 고백하는 것까지!(이건 참 고질병... 성공 확률 1%의 아주 나쁜 버릇인데요)

저를 닮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저는 연적을 쏴죽일 만큼의 배짱과 능력은 없지만요.

그러면서 얼마전 저에게 남편을 통해 결혼 소식을 알린 그녀 생각이 났습니다.

극중에서 막내 이리내는 모스크바에 가고 싶은 마음에 사랑하지도 않는 뚜젠바흐와 결혼하려고 하죠.

제가 떠올린 그녀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와 결혼했을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요새 느끼기에 한국에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적령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성과 하는 거.(한국 교회는 특히 더 그렇죠)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세 사람의 관계에 오버랩되어 씁쓸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극중 이리내가 솔료늬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만 ㅎㅎㅎ

 

이런 개인적인 감상은 여기까지만 하고요.

 

안톤 체홉이 '세 자매'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살아라. 어찌됐든 살아라겠죠?

살아도 살아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아는 날이 올 테니...(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란 노래가 떠오릅니다.)

계속 살아가란 것일 겝니다.

그리고 또,

극중에 등장하는 베르쉬닌이란 사람의 말처럼...

당장은 무언가를 알고 깨닫다는 게 부질없고 쓸모없어 보여도 아들에 손자에, 그 손자까지 가면 더 좋은 세상이 올 테니... 좌절하지 마라란 것이겠죠.

솔직히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서 참 절망스럽고...답답해서... 이 나라에 회의가 들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만.

19세기 봉건 러시아 사회에서 체홉이 느낀 절망은 더 크고 깊겠죠.

그런데도 이런 대사를 썼기에 체홉이 위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런 발자취를 한번 남겨보고 싶네요. ㅎㅎㅎ

 

물론 극중 베르쉬니은 자신의 현실조차 벗어나지 못해 아내를 버리지 못한 채로 불륜을 저지르고 그마저도 부대가 이전하는 바람에 비극적으로 끝내지만요. 그게 인생이겠죠.^^

 

어쨌든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일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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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09-15 12:09)
저도 지난 주말에 '오늘 손님오신다'란 연극을 봤는데요... 실험극이라 그런지 제가 거기서 실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힘들더군요... 재미난 연극 보신 것만으로도 행운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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