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안 되는 이유 2009년 09월 06일
작성자 윤석철

 

샬롬

 

모든 교우님의 평강을 기원합니다.

 

오늘아침에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체면과 얄팍한 지식과 알량한 이성 때문에 부끄러운 하루가 됐습니다.

 

스위스 수도 베른(Bern)에서 30 ~ 40킬로미터 떨어진 (Thun)이라는 도시에서 행사를 참가하고 이틀간 그곳 호텔에 묵었습니다. 어제 점심 무렵부터 비가 내리더니 사이 온도가 많이 내려가 아침에는 아주 쌀쌀했습니다.

 

오늘 이곳 독일 뮨헨 부근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아침 7 베른의 벨프(Belp)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 호텔 후런트 데스크에 아침 4 깨워 달라는 것과 공항까지 타고 택시를 예약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후런트 데스크의 젊은 여직원이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택시는 호텔에서 기차역까지만 타고 거기서 공항은 기차를 타고 가라고 권하더군요. 친절하게 기차시간도 프린트해주고요. 그러지 않아도 전날 공항에서 호텔에 너무 택시 요금이 많이 나왔던 생각이 들어 고마운 여직원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호텔에서 주선해준 택시 타고, 기차 타고 베른 공항부근 벨프역에서 내렸을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차역에 택시가 한대도 없고, 버스는 7 돼야 온다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항까지 거리가 족히 3 ~ 4 킬로미터는 되는데 들고 걸어갈 수도 없지요. 벨프 공항이 원래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나라의 수도에 있는 공항인데 기차역에서 시간에 연결편이 전혀 없다니 당황스런 일이었습니다.

 

켜진 키오스크 (조그만 상점) 들어가 택시 번호 하나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자기는 지금 이태리에서 휴가 중이라 스위스 벨프까지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수가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경황 중에도 대답이 하도 걸작이라 혼자 실실 웃었지요.  , 키오스크에 한잔 마시려고  들어왔던 남자분이 저를 태워다 주겠다고 말하더군요. 요금은 얼마나 달라할지 모르지만 달라는 대로 작정을 하고 너무 고마워 연신 땡큐 땡큐굽실굽실하며 차를 타고 공항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절대로 돈을 받는다면서 여행 잘하고 사업성공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공항에서 저를 내려주자마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분의 얼굴도 제대로 봐뒀던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짐을 부치고 체크인을 하면서 줄에서 50 보이는 여자승객 분과 체크인 카운터 여직원이 한참 옥신각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용인 , 필리핀 여자분들의 짐이 너무 많아 추가 운임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영국에서부터 많은 짐을 추가요금 안내고 모두 가지고 다녔는데 여기에서만 유독 돈을 내라 하느냐 봐달라 사정하는 얘기였습니다. 여자분들 뒤로는 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불만스런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리 속에 퍼뜩 도와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 특별한 대우를 받는 체크인도 편한 카운터에서 하고 짐도 다른 사람들의 배인 40 킬로그램까지 부칠 있습니다. 짐이래야 이틀 일정의 짐이니 10킬로그램 정도이었습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그분들 추가되는 무게쯤이야 아무 문제 없이 앞으로 처리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고질병이 도졌습니다.

첫째, 여자분들과 저는 모르는 사람이니 짐으로 체크인 한다는 것이 문제이고,

둘째, 그렇게 말하려면 제가 지금 체크인하던 편한 데스크에서 그쪽 데스크로 옮겨 체크인을 해야 하고, 

셋째, 혹시 여자분들의 속에, 그럴 리야 없지만, 곤란한 물건이라도 들어 있다면 법적으로는 저에게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넷째, “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그럴만한 사람들로 보이는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섯째, 솔직히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귀찮고,

여섯째, “에이그, 적당히 가지고 다니지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저만 체크인하고 보안 검사 받고 들어갔지요.

나중에 비행기 속에서 여자분들을 보니 웃고 떠들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돈을 추가로 안내고 사정사정으로 통과한 모양이었습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식품점에 들러 반찬거리 사가지고 와서 저녁 먹었습니다. 1 주일 만에 처음 밥하고 국을 먹으니 배도 부르고 나른하고 느긋합니다. 식구는 아무도 없이 휑하지만 그래도 집이라고 들어오면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다가 아침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필리핀 여자분들을 그렇게 해서 제가 도와드린다면 것이 항공사의 규정에 맞는지 맞는지 저는 모릅니다. 항공사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도 자신 없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도 자신 없습니다. 인정(人情) 옳은 일이 항상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래도 말이래도 해볼걸 하는 생각이 자꾸 떠나지를 않네요. 해결됐을 테니 괜찮지 생각하려 해도 뭔가 자신은 그게 아닌데 생각이 듭니다. 고질병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고질병입니다. 마음으로는 하고 싶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체면 따지고, 이것 저것 생각해보고, 나에게 무슨 영향이 있을까 이리 저리 재고 달아보고, 그리고 해도 구실을 교묘하게 잘도 찾아냅니다. 구실을 선반 삼아 불편한 마음 올려놓고 잘도 잠을 잡니다.

 

저는 오늘 아침 비행기를 탔을 것입니다. 제한이 많은 값싼 비행기표라서 비행기 놓치면 새로 비싸게 다른 비행기표 사서 뮨헨에 와야 했을 것입니다.

저를 만나려고 멀리서 뮨헨까지 6시간이나 걸려 찾아 손님은 그냥 돌아가야 했겠지요.

 

벨프 기차역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남자 분이 도와주지 않아도 이유를 다섯 가지 여섯 가지씩이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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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희(09 09-07 01:09)
제 생각에는 장로님의 경우와 그 남자 분의 경우는 상황이 다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장로님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아요. 또 거기에는 공항직원이 끼어 있잖아요. 그 남자분의 경우에는 물론 도와주지 않아도 될 이유를 몇가지씩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을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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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09-09 01:09)
그래도 저하고는 양심의 급이 좀 다르신 거 같습니다.

전 너무나 많은 일들을 너무나 흔하게 지나 버리고 말거든요... (단 싸움이 난 경우엔 꼭 참견하려는 이상한 성향 있습니다. 아직도 제가 어렸을 때 짱 먹었었다는 착각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거 같아요... 그럴 때면 저희집 식구들이 난리가 납니다--;;)

청파에 와서 양심의 화인이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 선하고 깨끗한 양심을 준비해 놔야 할텐데요... 잘 하려나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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