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2002년, 2009년 두 분을 떠나 보내며 2009년 05월 25일
작성자 권혁신
32년하고도 6개월 동안 전 살면서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전화를 두 번 받았습니다.
한 번은 2002년 9월의 어느 토요일이었고, 또 한 번은 2009년 5월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2002년 9월의 토요일.
컴퓨터 화면을 보며 므흣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저는,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휴일인데 출근한 회사 동료가 건 전화인데, 119구조대가 전화 걸어서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사고난 사람의 휴대폰에 회사 번호가 있어서 건 거라고 혹시
아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더랩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전 그 전화를 끊고서 곧장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낭패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너무나 밝은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지만, 택시를 타려는 순간 마른 하늘에 비가 내렸습니다.
연신내에 있는 청구성심병원으로 간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저는 영안실 차가운 관 안에 뒷머리가 깨진 채로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2009년 5월의 토요일.
전날 12시에 친구 녀석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하다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저는, 늦잠을 자며 뒹굴뒹굴하다가
10시쯤 걸려온 친구 녀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 왈 "뭐 하냐?" 하기에 그냥 누워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티비 봐. 노무현 죽었대"
화들짝 놀란 저는 황망한 마음으로 티비를 켰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보면서 수 차례 눈물을 훔쳤습니다.
2시의 독서모임 약속 때문에 버스 타러 나오면서 본 하늘은 우중충했고, 간간이 해가 비쳤지만 까딱하면 비가 쏟아질 것도 같았습니다.
15분가량 버스를 기다려 올라타니 뒷쪽 좌석에 나란히 앉은 어린 커플이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혹시나 했는데...
둘이 싸운 거더라고요. 그렇게 버스에 올라 교회로 향했습니다.

7년 전 제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하시다가 추락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4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오셨는데,
안전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파트 공사 현장 6층에서 작업을 하시다가 발을 헛디뎌 돌아가셨죠.
장례식에서 이 부분이 불거져, 보통 사람들은 3일 하는 장례식을 7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의금을 받고야 아버지를 장지에 묻어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철없던 저는 가장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나온 세상.(물론 그전에 아시안 게임 중계 본다고 가끔 나오기는 했습니다)
세상은 변한 게 없더군요.
여전히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는 세상. 서울 한구석에 살던 권 아무개란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누구 하나 신경 쓰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겠죠. 언제나 그랬으니까요.


이틀 전, 부고를 접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본 거리는
여느 주말과 같았습니다. 평온한 주말의 서울 거리. 그저 티비만 호들갑을 떠는 거 같았습니다. 인터넷을 보며 눈물을 훔친 저만 바보가 되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지만요.

그렇게 교회의 독서모임을 갔다 오고, 아는 동생을 만나 대한문 앞에 있는 추모 현장에 갔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니 제 심금을 울리는 글과 사진들이... 다시금 저를 눈물 짓게 하더군요.


그리고 어제 다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유독 주보의 '용서를 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중요하다'란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알 듯 말 듯한... 그 기분. 이 상황을 두고 올린 넣은 글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냥 그렇습니다.
그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 분을 보내고 나니,
제가 7년 전 아버지를 보내고, 그분을 아버지처럼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한나라당이 너무나 싫고 밉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그 사람에게 가족 같은 친근감을 느끼고,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뛰어다니고, 뉴스를 보면서 흐뭇해하고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비록 대통령으로서 잘한 부분, 못한 부분이 분명히 나뉘고,
후대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겠지만.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은 저에게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정도 심한 노빠들 중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을 땐,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감히 예수님을 어디다 대고 비교해! 그런 생각을 했지요.
제가 노빠란 사실도 부정하려고 했고요.
사실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 게 상당히 저어됩니다.
그래도 요새 계속 배우는 바를 통해,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분의 삶의 상당 부분이 예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출생과 비범한 어린 시절, 소탈한 품성, 기득권과의 대립, 고난의 생애, 무모한 도전, 기적과도 같은 승리, 끝없는 추락,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
그러나 사후에 사람들 가슴 속에서 다시금 살아나는 그의 향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닮은 것 같습니다. 하기야 이 땅을 사는 우리들 삶의 일정 부분은 예수님을 닮았겠지요. 정도의 차이일 뿐.

그분은 떠나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를 떠나게 한 이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저들은 그런 짓을 저지르고서는 뻔뻔하게 화해와 용서를 말합니다.
멀쩡한 한 사람을 발가벗기고 죽도록 때려놓고선 그 사람이 죽으니까 그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 때렸네. 그만 때릴게. 그냥 여기서 끝내자.
그러고 있죠.
그리고 조금 이따가 더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우리를 때려갈기고 착취하겠죠.
그런 인간들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게 너무나 가증스럽고 분노가 치밉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다 뒤집어엎고 박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전 또 그들과 합의를 해야 하고, 무언가를 받겠죠.
뭐 제가 받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요.


하지만 결코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어설프게 합의를 할지 몰라도 두고 두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저에게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저뿐만 아니라 분노하고 슬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를 빌지 않는 저들. 그들에게 부디 정의의 심판을. 정의가 살아있다면.



어제 일산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연신내에 내려서 걸어오는데...
연신내 사거리 한복판에 있는 물빛공원에서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각종 은평구 내에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애용되는 장소지요.
저에겐 2004년 총선 때 탄핵을 막겠다고 자봉 뛰고, 2008년 총선 때는 대운하를 막겠다고 자봉 뛴 추억의 장소입니다. 또 아버지를 떠나 보낸 장례식이 열린 장소고요.
바로 그곳에서 절 자봉 뛰게 했던 사람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으니 참 착잡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노사모, 문함대(문국현 팬클럽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거기 없었지만,
웬 중년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계속 추도 멘트를 날리더군요. 좀 듣기 민망한.
주변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고, 줄지어 조문을 했습니다.

그곳을 벗어나니 여느때와 다름없이 거리는 인파로 넘치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술마시고 제 갈길을 가고 있더군요.
순간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민주주의 국가고, 또 가신 분이 만들고자 했던 사회겠죠.
그리고 그 사람들 마음속에, 모두는 아니겠지만,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느낀 바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가는 거겠죠.
이렇게 저의 또 다른 아버지를 떠나 보냅니다.
안녕히 잘 가세요.

그리고 저도 당신처럼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또다른 예수 따르미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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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마음(09 05-25 07:05)
성서는 예수께서 숨이 끊어졌을 때 '하늘이 어두워 졌다'고 증언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하지만 무심한 세상은 그냥 그렇게 늘상 똑같이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신 그 분으로 인해..위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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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09 06-02 11:06)
그런 일이 있었구나... 가까운 사람의 이런 아픔을 돌보지 못하고 가식적인 인사만 주고 받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영결식 너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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