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21세기의 협곡 2008년 04월 04일
작성자 윤석철
지난 3월 13일, 한국일보 인터넷 신문(www.hankooki.com)의 <전문가 칼럼>에 실은 글입니다. 부족한 글입니다만 앞으로 연재할 <21세기의 협곡> 시리즈의 첫 글이라서 교우님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싶어 여기에 올렸습니다. 게을러서 한 2년 동안 쓰다 말다 했는데 이제부터는 열심히 쓰려고 작정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겠지요. 교우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생명과 평화 운동>은 청파 교회 교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의 절박한 문제라고 믿습니다. 청파교회의 한 사람인 것이 감사하고, <생명과 평화>를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 들이고 뜻을 모아 한 곳을 향해 나가는 교우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 [21세기의 협곡 1] 입 벌린 협곡(峽谷) (1) 윤석철 (한국일보 객원기자 ycs@hk.co.kr) 21세기 전반기 언제쯤, 인류는 소용돌이치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협곡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 협곡을 빠져 나가기에는 인류가 탄 배는 너무 크고 무겁다. 벌써 거친 물살은 뱃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진다. 물살이 더욱 거세진다. 입을 벌린 협곡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다. 이미 배를 돌릴 수 없다. <제임스 마틴(James Martin)>이 <21세기의 의미(The Meaning of the 21st Century)>에서 그려낸 인류의 운명이다. 필자는 이미 그 급류 협곡을 악몽 속에서 여러 번 만났다. 손쓸 틈 없이 부서지고 가라 앉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필자는 평화를 꿈꾸며 <무기와 전쟁 그리고 인간>이라는 시리즈의 글들을 썼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전쟁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은 급류에 휩쓸려 협곡으로 떠 내려가는 인류의 운명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일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현대에서는 전쟁이 계산 없이 곧바로 벌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철저한 전쟁기획 즉 사전 시뮬레이션 분석 평가 수정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하여 전 과정을 예측, 도상 연습한 후에 시작한다. 전쟁이 기획과 계산에 따르는 한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이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것처럼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는 명제가 아직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전쟁을 통해 얻을 것과 지불해야 할 것을 철저히 계산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류문명을 참혹하게 파괴하고 수세기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놀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얼마쯤 <살아 남은 자>를 통해 문명의 맥은 이어지고 그로부터 새 문명이 싹 틀 것이다. 전쟁이 아직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과는 달리 인류와 자연과의 관계는 파국적이라 부를 만큼 절망적이다. 2008년 3월, 많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한다.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자유시장과 효율성 실용성을 중심 축으로 삼는다. 세대라는 말의 본래 뜻과는 다르겠지만 그들을 <새 경제발전 세대>라고 부를만하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가치를 그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일쑤 인간의 본성 그 바닥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욕망을 흔들어 깨우고, 그 욕망을 선동적으로 부추긴다. 그들은 종종 탐욕스런 그 욕망을 그 시대의 <비전(Vision)>, <꿈> 또는 <내일>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본래의 길에서 멀어지고 비뚤어진 종교적 열정과 결합하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 꿈틀거리던 욕망은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그때 영악한 누군가가 <욕망은 실현된다>라는 깃발을 들고 앞에 나서기만 하면 순식간에 그 욕망을 공유하는 거대한 그룹이 형성되어 거리를 행진한다. 누구든 부끄럼 없이 쉽게 그 욕망 그룹의 대열에 낄 수 있다. 인류는 종교니 문화니 혹 도덕의 이름으로 수 천 년 동안 욕망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욕망이 거리로 나와 활보한다. 사람들은 욕망을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세대가 얘기하는 <내일>이 오늘 우리를 파멸시킬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경고해야 한다. 그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내일>일 수 있음도 얘기해야 한다. 욕망을 깨우고 부추기기 보다는 절제(節制)를 말해야 한다.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배에 더 이상 욕망의 짐을 실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해야 한다. 자연과 인류가 이 지구라는 혹성(Planet)에서 조화를 이루는 길을 얘기해야 한다. 이미 깨어지기 시작한 조화를 인류가 회복하는 일을 얘기해야 한다. 곧 인류가 개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문이 닫히고 모든 것을 오로지 자연의 손, <가이아(Gaia)> 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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