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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먼 산에 물결처럼 번지는 연초록 나뭇잎들의 바림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장엄한 생명 세계가 그곳에 있다. ‘골짜기의 신묘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아득한 암컷이라고 하고, 아득한 암컷이라는 문을 천지의 근본’이라고 했던 노자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산은 뭇 생명을 품어 안고 기른다.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는 그 산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을 어지럽힌다. 청명한 하늘이 못내 그립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도처에서 일어난 산불로 생명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다. 집을 잃은 이들의 탄식이 억눌린 함성이 되어 번져간다. 기후 재앙을 알리는 경고의 나팔소리가 이미 울렸지만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연하다. 더 많은 소비와 편리한 삶에 대한 욕망이 지구촌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적 책임 의식을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욕망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질주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를 갖지 못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각자도생의 원리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 확신은 삶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여러 겹의 보안장치를 만들어놓고도 사람들은 불안에 떤다. 불안은 우리에게서 여백을 앗아간다. 유머와 명랑함이 설 자리 또한 없다. 통전성을 잃어버린 마음은 날카롭다. 자기를 찌르기도 하고 남을 찌르기도 한다. 원망과 타자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고립에 대한 불안이 패거리를 짓는 일로 이어진다.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혐오와 갈등과 분열의 공장 노릇을 하고 있다.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와 관용을 통해 더 큰 세계로 역사를 견인해야 할 종교인들이 사소한 차이를 견디지 못한 채 서로를 적대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자기 확신에 찬 종교가 권력욕이라는 용매에 담길 때 광기라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연기는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 공익과 사익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군중은 시장의 가치를 좋아하고 하인은 더 강한 자를 존중할 뿐’이라는 횔덜린의 말이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지금은 바야흐로 정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미국의 식물생태학자이자 작가인 로빈 월 키머러는 엄마라는 정체성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 로빈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켄터키를 떠나 뉴욕 교외에 집을 마련했던 일화를 들려준다. 아이들과 함께 단풍나무 위에 요새도 짓고 언덕 꼭대기로 소풍도 갔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연못을 헤엄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연못은 녹조와 물풀로 뒤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조류와 연잎, 낙엽이 떨어져 형성된 오니가 담요처럼 깔려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갈퀴로 물풀을 걷어내고, 연못 바닥을 긁어내 그것을 수레에 담아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랐다. 들통으로 콩자갈을 날라 모래톱에 붓고, 깨끗한 물을 연못에 공급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노동이었다. 연못을 헤엄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어찌 보면 어리석은 노동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지난한 노동의 의미를 이런 말로 요약한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돌보는 법을 자녀에게 가르친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덕목인지도 모르겠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만이 그 인고의 세월을 이겨낼 힘의 근원이다. 좋은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조급함과 성과주의야말로 역사 발전의 걸림돌이다.
시인 나희덕은 불가능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산산조각난 꿈들을 이어붙이는 것을 시인인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인다. 그래도 그것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는 스스로 ‘가능주의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는 ‘가능주의자’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그 어긋남에 대해/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반딧불이 하나가 깜박인다고 세상이 밝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깜박일 때 세상은 돌연 꿈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역사의 지렛대를 움직일 수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기에 나도 마음에 차오르는 절망감을 다독이며 가능주의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2023/04/15,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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