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 2015년 07월 18일
작성자 김기석

 이것이 인간인가?


"한 목소리를 지녔지만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이다. 그리스 비극에 따르면 스핑크스는 테베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수수께끼를 내고, 풀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 먹고 푸는 사람은 입장을 허용하는 괴물이다. 오이디푸스가 이 문제를 풀었고 스핑크스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벼랑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답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인간'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의문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가리켜 보인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이 문제를 다루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없다.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였던 프리모 레비는 나치의 수용소 체험을 다룬 책을 쓰고는 그 제목을 <이것이 인간인가>로 정했다. 이 제목 속에서 '인간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탄식을 듣는다면 과민한 반응일까? 화가 조르주 루오는 '미제레레(긍휼히 여기소서)' 연작 가운데서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해놓은 작품에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다'라는 홉스의 말을 새겨놓았다.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한 루오는 뿌리깊은 인간의 죄성에 몸서리를 쳤다. 함부로 대상화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인간의 실상을 보면서 그는 어쩌면 기도하는 심정으로 '미제레레' 연작을 제작했을 것이다.


제자에게 비인간적인 폭행을 가한 교수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자인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제자를 디자인 관련 학회 사무국에 취직시켜 주었다 한다. 일년 쯤 지난 후부터 폭행이 시작되었다. 실수가 잦고 일을 잘 못한다 하여,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손발을 묶고 얼굴에 비닐을 씌운 후 수십 차례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인분을 먹이기까지 했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입원치료를 받으면서도 가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그가 제공해 줄 수도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참하지 않은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사람이 이렇게 비루하게 전락해서는 안 된다. 자기 힘을 과신한 나머지 다른 이들을 서슴없이 물화시키는 사람도, 또 그 그릇된 권위에 짓눌린 채 숨죽이는 영혼도 가엾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의지를 누군가에게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렇기에 권력에의 욕구는 집요하다. 권력은 전능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에의 욕구에 사로잡힐 때 참 사람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정원을 비롯한 여러 국가 기관들이 이탈리아의 해킹팀으로부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도청 혹은 감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르(RCS)를 구입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대북 해외 정보전을 위한 연구 개발용'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그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라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누군가의 사생활을 어항을 들여다보듯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규율과 통제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일수록 그런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영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파놉티콘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을 감시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 어둠 뒤에 숨은 이들은 자신의 전능성을 과신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약자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안으려는 마음이 커지지 않는다면 역사의 진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목록편집삭제

로데(15 08-21 06:08)
바로살기. 그것이 모든것에 우선하는 보편적 가치가 될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해지겠지요.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