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28-냉이꽃 피어있는 담이었구나 2015년 07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냉이꽃 피어있는 담이었구나


잘 지내고 계신지요?

소서小暑가 코 앞이이서 한낮에는 조금 덥지만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있으니 고마운 초여름입니다. 맑은 바람에 취하고 배부를 수 있다면 잠시간 누리는 낙으로 족한 것 아니냐는 옛 사람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까지 교회 포도나무 아래에서 다른 화초들의 등쌀을 꿋꿋이 견디어내며 예쁜 꽃을 피어내던 매발톱꽃이 이제 마침내 화려한 꽃시절을 마감했습니다. 어느 날 외부에 다녀왔더니 옥매 열매는 사무실 식구들이 다 따먹었더군요. 대추나무에 하나 둘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기쁨이 큽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을 환하게 해주던 것이 해바라기였습니다. 쑥쑥 키가 커지더니 어느 날 노란빛 고운 꽃을 피어 올렸습니다. 한 송이 두 송이 날마다 해바라기의 개화를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이 분주한 가운데 제가 누리는 일상의 낙이었습니다. 


며칠 전 출근 길에 해바라기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더니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가가 살펴보니 누가 가장 탐스러운 꽃 한 송이를 뭉텅 잘라갔더군요. 일시에 허탈과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깟 꽃 한송이를 가지고 뭘 그래요 하고 나무라셔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누가 함박꽃을 몇 송이 잘라가서 어처구니 없어 했는데…. 이 소박한 살피꽃밭을 통해 여러 사람이 누리는 기쁨을 그렇게 훼손한 그 손이 미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주를 퍼붓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안타깝고 속상했다는 말입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꽃씨와 도둑'이 떠올랐습니다. "마당에 꽃이/많이 피었구나//방에는/책들만 있구나//가을에 와서/꽃씨나 가져 가야지". 짧지만 울림이 큰 시입니다. 이런 예쁜 도둑이라면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 한 송이를 두고 인간성 운운 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마음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 읽었던 한 책에서 만났던 시가 떠올랐습니다. 일본의 선불교 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세기 영국 시인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과 일본의 에도 시대의 하이쿠 시인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시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드러내려 합니다. 합니다. 먼저 테니슨의 시입니다. 


갈라진 벽 틈새에 피어 있는 꽃

나는 틈새로부터 너를 뽑는다.

나의 손에 너를 뿌리째 쥐고 있다.

귀여운 꽃―그러나 만일

네가 어떠한 것인지 너의 전부를 알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으련만.

(E. 프롬/鈴木大拙/R. 마르티노, <禪과 精神分析>, 정음사, 김용정 옮김, 1977년 9월 30일, p.132)


시의 화자는 꽃 한 송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세상은 모두 한 호흡으로부터 나왔다는 시적 직관에서 비롯된 확신일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벼랑에 핀 꽃을 뽑아 따내네요. 그는 꽃의 운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꽃은 그저 신과 인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는 데 필요한 대상일 뿐입니다. 이 기묘한 불일치를 스즈키는 예리하게 포착해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바쇼의 하이쿠를 읽어보겠습니다. 


자세히 보니

냉이꽃 피어 있는 담이었구나.

(앞의 책, p.129)


아시다시피 하이쿠는 5, 7, 5의 3구 17 글자로 되어 있는 일본의 단시입니다. 번역자는 17자를 맞추느라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3구를 맞추지 못한 게 유감이라면 유감이겠습니다. 여하튼 이 시에서 시인은 꽃을 가만히 그리고 자세히 바라봅니다. 어쩌면 숨조차 죽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그 고요한 순간이 일렁일 것 같아서요. 냉이꽃이 피어 있는 담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평범함 속에 깃든 하늘을 보고 있는 겁니다. 굳이 하늘이라는 말을 피해야 한다면 그 속에 깃든 생명의 신비를 보았다고 할까요? 바쇼의 시구 속에서 나는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천진한 이들에게는 세상에 신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가끔 가족들이 모이면 서로 어린 시절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주로 형이나 누나들이 동생들을 놀리는 것이지만 그 때마다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스스럼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의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remember' 속에는 '다시-멤버가 되다'는 뜻이 담겨있다지요? 제 막내 누나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대요. 식구들이 마루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놀던 누나가 허겁지겁 안마당으로 뛰어들더니 배꼽을 잡고 웃더랍니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식구들에게 누나는 웃음을 참느라 애쓰면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모자를 쓰고 가요" 그러고는 다시 가가소소하더랍니다. 그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거의 60년이 되었네요. 그 가난했던 시절, 웃음은 그렇게 헤펐습니다.


이제는 우리 마음이 참 각박해졌습니다. 소비사회가 도래한 후 우리는 소비자로 전락하였고-그렇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전락입니다-삶이 말할 수 없이 분주해졌습니다. 소비사회의 죄는 욕망의 절제이고, 소비사회의 복음은 새로운 상품이고, 쇼핑 센터는 신전입니다. 욕망과 충족 사이의 거리는 늘 좁혀지지 않습니다. 다가가는 만큼 멀어지는 카프카의 '성'을 닮았습니다.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이 참 모질게 변했습니다. 서울에서 골목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웃간의 정도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가요? 분주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가신 것이.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그럴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 무척 대견해 보였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는 나의 처지에서는 그런 실행력이 불가사의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노인들만 있던 마을에 젊은 일꾼이 들어오자 마을 어른들도 신명이 났다지요? 마을 머슴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걸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이일 저일에 불려다니느라 고단하기는 하지만 흙을 만지는 삶이 참 좋다고 하셨지요? 첫 수확이라며 보내주신 감자를 삶아 먹을 때마다 그 천진한 얼굴을 떠올리며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농촌 생활이 주는 고단함과 행복, 어느 것이 더 클지 나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귀촌을 부러워하면서 헤르만 헤세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빼어난 소설가이자 문필가였지만 정원 가꾸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기던 사람입니다. 그는 나무들이야말로 자기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강력한 설교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나무들이 위대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버티어 간 사람들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내 안에는 핵심이, 하나의 불꽃이, 하나의 생각이 숨겨져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 영원한 자연의 어머니는 나와 더불어 전례가 없던 일을 시도한다. 내 모습과 내 피부 밑에 흐르는 혈관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내 우듬지에 매달린 가장 작은 잎사귀가 벌이는 유희, 내 가지에 난 아주 작은 상처조차 유일한 것이다. 내 사명은 바로 그런 일회적인 것 속에서 영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두행숙 옮김, 이레, 2002년 1월 30일, p.52)


한 그루 나무에 매달린 작은 잎사귀가 벌이는 유희도, 가지에 난 작은 상처도 유일한 것이라네요. 그런 일회적인 것 속에서 영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이 빈곤하지는 않을 겁니다. 농촌에 머무는 동안 그런 생의 신비에 눈을 뜰 수 있기를 빕니다. 농번기여서 분주하겠지만 가끔 한눈을 팔기도 하면서 이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세요. 평안을 빕니다. 


덧붙임: 해바라기가 잘린 바로 그 자리에 집사님 한 분이 스티로폼 위에 덧바른 종이에 예쁜 해바라기꽃을 그려서 부착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바라기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꽃을 잘라간 이는 그 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궁금합니다.

목록편집삭제

로데(15 07-11 01:07)
그 목사님에 그 집사님이십니다^^동화책 보는듯해요.축복합니다.예수님 이름으로.(해바라기도 안녕~)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