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26-13인의 아해가 거리로 질주하오 2015년 06월 24일
작성자 김기석

 

 

 13인의 아해가 거리로 질주하오


평안하신지요?

사위가 어둠에 묻혀 고요한 이 이른 새벽 시간이 참 좋습니다. 창가에 서서 잠들어 있는 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두루 평안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서재로 돌아와 십자가 아래에 촛불을 밝혀 놓고 물 위에 아로마 향 서너 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호흡을 가지런히 하고 그 향기가 몸과 마음에 스며들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서없이 떠오르는 얼굴들을 마주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빌었습니다. 이 시간이 내게는 가장 깊은 소통의 시간입니다. 


한 두어 달 얼굴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떻게 지내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이면 마치 거짓말처럼 그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지방에 머무느라 교회에 올 수 없었다면서 그 동안의 작업을 담은 사진집 하나를 제게 건네주셨지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마지막 밤(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 책의 표지는 마치 모르스 부호인 듯 선과 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움의 타전인가요? 그런 선과 점으로 된 기호는 책의 안쪽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사진집을 죽 넘기면서 선생님의 존재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쓸쓸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풍경은 어쩌면 작가의 내면 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뒤에 붙인 작업노트를 통해 이번 사진집에 담긴 풍경이 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심야 풍경인 것을 알았습니다.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속도를 요구하는 세상의 폭력성에 지친 이들이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찾아간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하셨지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1970년을 기점으로 하여 2015년 현재 전국에 37개의 고속도로가 운영 중이고, 최초의 휴게소인 추풍령 휴게소를 비롯하여 210개의 휴게소가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겠지요.


내게는 휴게소의 추억이랄 것도 없습니다. 기껏 떠오르는 것이 화장실, 호두과자, 우동, 커피, 스트레칭, 사람들의 들뜬 표정 등입니다. 아, 어딜 가나 들려오는 뽕짝 소리도 있네요. 요즘은 이월상품 매장과 놀이시설까지 갖춘 휴게소도 늘어나는 추세이더군요. 그런데 한 밤중에 불이 다 꺼진 휴게소의 풍경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일상의 시간이 지나간 후의 여운을 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난 곳에 놓인 사물들과 풍경은 황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사물과 풍경도 쉼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화분, 나무 의자, 모형 소떼, 기린, 나무 인형, 여러 가지 금지를 알리는 기호들, 자판기, 각종 조형물들, 놀이기구, 장승, 지역 특산품 매장, 공중전화 부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프렌체스코 교황의 전신사진, 모형 탱크, 팔 잘린 비너스, 그리고 질주를 멈추고 쉬고 있는 화물차들…. 선생님은 휴게소에 대해 이렇게 쓰셨더군요. 


"누구도 정주하지 않는 공간이자 누구에게도 목적지가 되지 않는 그곳은 고속도로에서 허락된 조악하지만 유일한 해방구였다. 속도에 구겨진 몸을 잠시 쉬게 하는 곳, 궤도에 다시 오르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그곳은 우리가 "잠시나마 궤도의 이탈을 허락 받는" 곳, "속도 유예의 공간", "속도에 떠밀린 존재들이 모여 사는 외딴 섬마을"이었습니다. 이런 표현들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시 제1호'가 떠올랐습니다. "13인의아해가거리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띄어쓰기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이 시는 그 자체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숫자만 달라질 뿐 반복되는 시 구절을 읽다보면 저절로 숨이 가빠집니다. 이상은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근대성의 불안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일까요? 가인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에덴의 동쪽 놋(Nod) 주민들의 삶이 바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13인의 아해는 무서워서 질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질주하기에 무서울까요?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가그렇게뿐이모였소."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는 사실 둘이 아닙니다. 이건 바로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질주하는 시간 속을 질주하는 삶이 고단한 것은 당연합니다. 가끔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마다 이사야서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신들을 찾아 나선 여행길이 고되어서 지쳤으면서도, 너는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너는 우상들이 너에게 새 힘을 주어서 지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구나."(사57:10, 새번역) 지쳤음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회복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고속도로 휴게소의 밤 풍경을 다 찍고 난 후에도 여전히 마음의 헛헛함이 해소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에둘러 가려다 수렁에 빠졌다" 하셨지요. 어쩌면 우리는 그런 황량함 속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최근 사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삶의 풍경에 넌더리가 나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해한 것이라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쓸쓸한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결국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풀어줄 열쇠는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우렁더우렁 함께 어울려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질주해야 하는 '도로' 위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별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야기의 빈곤이야말로 삶의 빈곤이 아닐까요?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꾼의 몰락을 경험의 궁핍과 아우라의 쇠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실과 연관시킵니다. 근대성이 만들어낸 궁핍함입니다.


퍼시 애들론 감독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를 보셨는지요?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어떤 몽환의 세계로 초대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영화에 대해 길게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행 도중 부부 싸움이 벌어져 사막 한복판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쟈스민의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정장, 깃털 달린 모자, 커다란 캐리어, 구름 낀 하늘에 언뜻 비치는 햇살, 그리고 비애조차 느껴지지 않는 쟈스민의 무표정한 얼굴. 그뿐인가요? 카페의 주인인 브렌다의 권태로워 보이는 모습, 화면을 타고 흐르는 음악 또한 몽롱합니다. "라스베가스에서 어디론가 통하는 사막길 어디쯤/당신이 머물던 곳들보다 더 나은 곳/커피 머신마저 고장나버린/마치 쓰러져버릴 것 같은 작은 카페에서/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들리지 않나요?/난 당신을 부르고 있는데". 영화는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두 여인이 차츰 자신만의 사막에서 벗어나 우정의 공간을 열어가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쟈스민이 보여주는 마술이 그 단초가 되지요. 마술은 비일상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눈속임임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기라고 성을 내지 않습니다. 함께 즐거워할 뿐이지요.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름은 비일상적 세계를 가리키는 기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무목적성의 세계이고 무의도의 세계입니다. 그곳은 일상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비밀의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을 거친 후 쟈스민과 브렌다의 일상이 따뜻하게 회복되더군요.


"카메라는 빛을 쌓는 기계"라 하셨지요? 무슨 뜻인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지만 그저 제멋대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진작가는 흩어지고 미끄러지는 시간을 기록하는 이들이라고 말입니다. 사진 속에 담긴 시간은 물론 파편적이지만 달리 보면 영원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표일 겁니다. 그림자 속에서 빛을 보고, 빛 속에서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참 좋겠습니다.


저는 지인들과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을 때 더러 한눈을 팔며 살라고 권합니다. 수영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마시듯 비일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열릴 때 삶이 건강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주변을 잘 살피면 여기저기 이야기가 고여있는 곳이 참 많습니다. 분주한 마음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입니다. 작고 사소하고 연약한 것들에 눈길을 줄 때, 덧거친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내면에 깃든 그늘이 조금은 벗겨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눈길이 밤의 휴게소를 떠나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지네요. 그곳이 어디이든 충실하게 빛을 쌓고 계시겠지요?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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