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27 2015년 05월 11일
작성자 김기석

 하나님,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온전히 주님의 현존 앞에 머물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가볍게, 명랑하게, 즐겁게 살고 싶지만 번번이 마음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굴복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염려들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기에' 이미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느껴보라 하십니다. 주님,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땅의 일에만 붙들려 살아왔습니다. 욕망을 절제하며 살기보다는 욕망을 부풀리며 살아왔습니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동료 피조물들의 삶의 자리를 망가뜨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마음도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 속에 깃든 하늘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 이런 우리 마음을 새롭게 빚어주십시오. 아멘. (3/4)


하나님,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신다"는 시편 시인의 노래가 실감이 나는 나날입니다. 흙으로 빚으신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 같이, 주님은 온 땅에 입김을 불어넣으시어 모든 것이 깨어나게 하십니다. 겨우내 잠들었던 뭇 피조물들이 깨어나 생명의 주인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온갖 생명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우리의 잿빛 일상을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이는 날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이런 계절에도 여전히 몸과 마음을 펴지 못한 채 지내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냉랭한 세상에 살면서 인간다운 존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행복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 분노심으로 찢긴 사람들, 그리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봄신명에 지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우리 마음도 그렇게 피어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3/11)


자비로우신 하나님,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는 말씀이 왜 이리도 아프게 느껴지는지요. 오늘 이 땅에 있는 교회의 현실이 주님을 시장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길 가에 있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하셨습니다. '열매 없음', 바로 이것이 우리의 참상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가 주님의 몸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지금 소금도 빛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앞에서 추문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삶으로는 주님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죄 짓는 것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3/18)


자비로우신 하나님, 느릿느릿 걷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맞이했지만 주님은 홀로 외로우셨습니다. 제자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미구에 벌어질 일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벌린 입을 향해 나아가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지만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못난 자식의 부끄러운 모습까지 사랑으로 품어 안는 어머니처럼, 주님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은 물론이고 미움과 증오까지도 온전히 당신 몸으로 받아 안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폭력과 미움조차도 그 날카로운 서슬을 잃고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온 세상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고,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화해의 빛임을 믿습니다. 주님, 그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3/25)


할렐루야,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합니다. 하나님, 온 누리가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청신한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무덤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절망과 어둠의 시간은 주님은 부활과 더불어 끝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돈의 땅에 살면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가 당혹감을 안고 자리를 떠났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방황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십시오. 우리를 무기력의 늪으로부터 구해주십시오. 부활의 능력에 사로잡혀 겸허하지만 당당하게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지금도 여전히 하늘 빛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늘 빛을 나르는 수레가 되게 해주십시오. 희망이 없는 땅에 희망을 파종하게 하시고, 불화의 땅에 평화의 씨앗을 심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십시오. 아멘, (4/1)


하나님, 온갖 꽃들이 피어나 마치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처럼 보이는 계절입니다. 능수버들의 춤사위는 아련하게 평화로웠던 세상을 떠올려주고, 조팝나무 흰 꽃은 무채색의 도시를 순정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잡아채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 채 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꽃들도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죽어간 304명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호명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천하보다도 귀중한 이들이었습니다. 아직 그들의 죽음은 신원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한 9명의 실종자들도 있습니다. 주님, 그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진상이 드러나 다시는 그런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게 해주십시오. 우리보다 먼저 눈물의 땅 갈릴리로 가고 계신 주님의 뒤를 따를 용기를 주십시오. 아멘. (4/8)


하나님,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은택을 입히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연초록 잎들이 아름답습니다. 들과 산으로 서서히 번져가는 초록의 물결이 사뭇 감동적입니다. 주님, 자연은 이렇듯 시간의 질서를 따라 사뭇 조화로운 데, 공들여 지어주신 사람들은 갈등과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소문들은 흉흉하기 이를 데 없고, 진실과 거짓이,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습니다.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할 지도층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에서 희망의 빛을 앗아가는 형국입니다. 에스겔을 통해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며 준엄하게 꾸짖으시던 그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주님, 이 땅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 땅의 시민들이 다시 한번 아름다운 나라의 꿈을 꾸게 해주십시오. 아멘. (4/15) 


하나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하는 일이 왜 이리도 힘겨운지요? 여리고 착한 이들이 번번이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보는 세상이 참 야속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무심결에 '참 좋다'고 말하다가도, '이렇게 즐겨도 되나' 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시대입니다. 울고 있는 이들 옆에서 차마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어쩌다가 우리가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요? 자기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이 욕망의 벌판을 질주한 끝에 우리가 당도한 것은 바로 이런 인정의 황무지입니다.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었던 동구 밖 느티나무 같았던 공동체는 다 스러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주님, 무너진 이 땅의 공동체들을 일으켜 세워주십시오. 특히 주님의 몸인 교회가 생명과 평화의 길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4/22)


하나님, 아름다운 5월의 아침입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고 싶습니다. 공원에 나와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어여쁜지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송이 꽃입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겅중거리며 걷고 있는 아이들을 봅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마음 든든하고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해 마음 깊은 곳에 그늘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품이 되시어 그들을 안아 주십시오. 주님,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덧거친 세상에 사느라 우리 마음이 너무 거칠어졌습니다. 상처투성이인데다 바짝 메마른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크신 은혜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갈아엎어주십시오. 아멘. (4/29)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저 밤 하늘에 총총한  별과 자기 가슴에 있는 도덕률을 놀라움으로 자각했던 어느 철학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살아온 날을 돌아보니 온통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가 되어 우리를 이 세상에 초대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연약할 때에 깊은 사랑으로 돌보아준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 땅에 사는 동안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지금도 우리 곁에는 절망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정함과 무관심의 사슬을 끊고 그들에게 다가가 희망과 사랑의 끈을 건넬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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