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검은 바다, 혼돈의 바다 2015년 04월 24일
작성자 김기석

 검은 바다, 혼돈의 바다


"나는 바다가 그립다. 우리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아픔을 주어서 마침내 우리 몸 속에 스며들어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병을 그리워하듯이." 장 그르니에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바다는 지중해이다. 서양의 역사는 지중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내해인 지중해는 숨결 거친 사내들로 하여금 자기 확장을 위한 모험에 뛰어들도록 유혹했다. 그곳은 문명의 교류 통로였고,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 새로운 정신을 주조하던 문화의 묘판이었고,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운 예술의 바다였다. 그곳은 서구인들에게 아득한 그리움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러 문명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보던 이 바다가 지금 아프다. 희망을 찾아 떠났던 수많은 이들이 속절없이 가라앉아 무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사하라 이남에서부터 길을 떠난 사람들, 광기에 찬 이슬람 국가(IS)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들의 꿈은 시커먼 물결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섬 람페두사를 약속의 땅인양 여기며, 불완전 연소로 매캐한 기관실부터 갑판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은 용변조차 참아가며 공포에 떨었다. 꽃들이 난분분 피어난 이 화사한 4월에 그들은 공포의 바다에 삼켜지고 말았다. 올해에만도 그 수가 수 천을 헤아린다. 바다는 혼돈의 괴물처럼 무정했다.


누군가의 절망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지중해의 밀항 알선업의 연간 경제 규모는 3억 내지 6억 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돈이 있는 곳에 검은 손들이 몰려든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실이다. 국제 범죄 조직이 손을 대기 시작했고, 내전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민병대도 끼어들고 있다. 빚을 내 배에 탄 사람들은 선원들의 지시를 어겼다 하여 죽임을 당하고, 종교가 다르다 하여 내던져지고, 배가 난파하여 죽어갔다. 운 좋게 바다를 건넌 이들도 유럽의 인신 매매 조직에 팔아 넘겨지기도 한다. 세상의 약자들은 어디서나 이렇게 소모품처럼 소비되고 만다.


세월호의 참사를 겪었기에 지중해 난민들의 사연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은커녕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오리무중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피의 외침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일부 언론은 배·보상금 액수를 운위하며 사건의 본질을 휘갑치려 한다. 이 슬픈 땅에서 정치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에 해외순방을 떠났고,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물대포와 켑사이신 세례를 받았다.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정치인들은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서슴없이 한다. 나의 불찰이라고 가슴을 치고 통회하는 이들이 없다. 국민들의 윤리의식은 정치인들로 인해 더욱 낮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빚어지는 굉음이 사회적 약자들의 신음소리를 삼키고 있다. 검은 바다, 혼돈의 바다는 지금 이 땅 위에서도 넘실거리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 공동체 혹은 국가는 오래 갈 수 없다. 그것은 장구한 역사가 보여주는 자명한 진실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바로 '내가 머무는 땅'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이 땅에 부정한 피가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중해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그리고 이 혼돈의 땅에서 난파당한 이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가인에게 죽임 당한 아벨은 지금도 땅에서 부르짖고 있다. 그 소리를 외면하는 국가에는 희망이 없다. 곡우 절기에 밭을 갈고 논을 써레질하는 농부들을 본다. 지금이야말로 정의를 밭 갈고 평화의 씨를 뿌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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