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11-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2015년 03월 12일
작성자 김기석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그 동안도 평안히 잘 계셨는지요? 경칩 절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봄이 지척입니다. 봄 신명에 지펴볼까 했는데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군요. 잠시 스산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카페에 나와 앉아 있는데 열정이 과한 이들의 큰 목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네요. 공적 공간을 사유화하는 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낯을 찌푸리고 그쪽을 바라봅니다. 말의 속도도 빠른 데다가 높고 새된 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을 보며 심호흡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어서 이 시련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요.


유럽을 떠돌다가 지칠 때마다 도시 어디에나 있는 교회당에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다리 쉼을 할 요량이었지만 실은 도시의 번잡을 잠시 떠나 고요함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뉘른베르크의 어느 예배당에서 '고요함의 오아시스'라는 말을 만났을 때 나는 마치 그것이 교회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예단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진동한동 다니느라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지런해지고, 이리저리 분산되었던 정신이 초점을 되찾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절로 솟아나오는 곳 말입니다. 


떼제에 잠시 머물 때 저는 거의 매일 로제 수사가 묻혀 있는 마을 교회를 찾곤 했습니다. 그곳에 온전한 고요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색유리를 투과한 빛이 부드럽게 실내를 어루만졌고, 낡은 장의자 위에도 슬며시 내려앉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빛조차 숨 죽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제 가보아도 제대 아래에 오랜 시간 오체투지로 엎드린 이들이 꼭 있었습니다. 더러 침묵의 뿌리에 가닿으려는 듯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도 그 고요함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서로 지켜야 할 것을 지켰습니다.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침묵 안에서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요즘은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우리의 사유와 삶의 방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종교 시설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거룩의 현존 앞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지인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누군가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3초 이내에 대답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절실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사실 저는 꿈을 묻는 이들에게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삶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오래 전 제 마음에 들어왔던 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제 사람들에게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 전 베를린에 갔을 때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마리아 레기나 마르티룸(Maria Regina Martyrum) 성당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단 뒤에 걸려 있는 조지 아이스터만(G. Eistermann)의 대형 프레스코화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시>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는데 밝은 색의 빈 공간 속으로 어두운 빛깔의 사각형 조각들이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한 개의 눈과 왕관을 쓴 어린 양 그리고 둥근 낫이 그려져 있었는데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의 두려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제단에 그런 추상화를 설치할 생각을 한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본 예배당 밖에 있는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 앞에 사람들이 밝혀놓은 촛불이 가만히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망자들의 혼이 산 자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디트리히 본회퍼의 이름도 기록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뒷편에 있는 소예배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저는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자연 조명과 인공 조명이 절묘하게 뒤섞인 공간은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했습니다. 특별한 장식이 없기에 그 공간은 오히려 깔밋하게 보였습니다. 자극이 최소화 되었기에 깊이 침잠할 수 있었고, 나의 작음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며 공존하는 그곳에서 나는 그분의 그느르심을 흔감하게 경험했습니다. 제대를 가운데 두고 'ㄷ' 자 모양으로 배치된 장의자마다 고요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너무 커서 압도하지도 않고, 너무 작아서 답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60여 명 정도 쯤 앉을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마치 영혼의 고향에 당도한 것 같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성스러운 공간에서 쉽게 떠날 수가 없어 아주 오랫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찾아왔고, 부박한 나의 실존이 떠올라 눈시울이 시큰해졌습니다. 그때 제게 그 꿈이 들어온 겁니다. 그런 공간 하나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구요. 들어서는 순간 신의 현존 앞에 선듯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공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꿈이 절실하면 이루어진다는 통설을 믿어도 될까요?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서 조금 고요해졌습니다. 울가망하던 마음이 조금은 거늑해졌습니다. 산 저편으로 서린 이내(嵐氣)가 신비롭습니다. 엊그제 전주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그는 '혼불'을 잃은 우리 시대에 밝혀진 밝은 등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 초에 혼불의 첫 권이 나왔을 때는 작가의 더디고 섬세한 문장을 견딜 수가 없어서 책장을 덮기도 했습니다. 그 참담한 시대를 지나는 동안 그런 속도를 견딜 수 없을 만큼 내 영혼은 조바심치고 있었던 때문일 겁니다. 책을 다시 손에 든 것이 1999년인데 이때는 작가의 영혼과 깊이 조응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게 1998년이니까 아둔한 나는 그의 사후에야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셈입니다. 


문학관에서 만난 몇 구절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꽤 오랫동안 글이랍시고 쓰면서 아까운 종이를 축내온 처지라 이 말은 참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나름대로는 진실하려고 애써왔지만 내 넋의 무늬를 찍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믐은 지하에 뜬 만월(滿月),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작가의 11회 단재상 수상소감을 요약한 말이라더군요.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의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참 낯선 말일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을 보는 동시에 빛 속에 깃든 어둠을 보는 사람이지요. 작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더불어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들 속에서 불멸의 계기를 보는 것이지요. 문학관에서 무엇보다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가의 손글씨였습니다. 단정하고 듬쑥한 글씨는 작가의 고요한 영혼의 풍경과 같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천천히, 또박또박 마치 원고지에 글을 새기듯 적어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최명희 선생에게 글쓰기는 치열한 구도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려 3미터에 달한다는 '혼불' 원고지에 그는 십 수년에 걸쳐 자기 혼을 새겨넣었던 것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자막이 제 눈길을 잡아챘습니다.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혼불>은 내 온 존재를 요구했다. 

나는 일필휘지가 갖고 있는 한 순간에 우주를 꿰뚫는, 

정곡을 찌르는 강력한 힘도 좋지만 

천필만필이 주는 다듬어진 힘이 좋다.

내 정신의 가지는 저 찬연한 빛의 책에 이를 것인가."


일필휘지를 탐한 바는 없지만 저는 글을 꼼꼼하게 다듬지 못합니다. 이상하게도 한번 쓴 글을 다시 읽고 싶어하지 않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퇴고를 거듭하는 이들을 보면 부끄러워집니다. 최명희 선생의 태도는 오에 겐자부로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자기 글쓰기를 '일래버레이션elaboration'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정교화'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오에는 '노작(勞作)'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다듬고 또 다듬어 마침내 더 다듬을 수 없는 데까지 이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대가들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인격, 삶을 대하는 태도,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 그 무엇이든 정성을 다할 때 진리의 옷자락을 만져볼 수 있지 않을까요? 거룩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거룩함을 체현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끝없이 사람들을 훈육하려는 종교인들-저 자신을 포함하여-보다 자기 일에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에 어린 하늘빛에서 깊은 위로를 받곤 합니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저만치에 그리움으로 호명할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내내 청안청락하시길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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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자(15 03-13 11:03)
모든 일에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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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15 04-10 10:04)
멋모르고 휘갈겨 쓰듯 지나온 길이 참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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