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25 2014년 12월 28일
작성자 김기석

 

하나님, 10월의 첫 주일 아침, 주님 앞에 마음을 모으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들로 인해 마음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우리들입니다. 괜히 서러워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느라 영혼이 그만 파리하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우는 이들을 보며 낯을 찌푸렸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무정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이들의 오만한 노랫소리가 드높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던 이들은 숨을 죽인 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일어나십시오. 가련한 이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마시고, 상한 갈대 같은 이들 속에 주님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로운 희망의 가락을 연주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10/1)

 

하나님, 새벽녘 선들한 기운에 무릎 담요를 어깨에 두르다가 거리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이들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아무리 애써 보아도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이들의 퀭한 눈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렀지만, 저들의 억울함은 신원되지 않았습니다. 속이 타 까맣게 변해버린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길 가는 모든 나그네들이여, 이 일이 그대들과는 관계가 없는가?" 묻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일어나시어 진실이 드러나게 하시고 정의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이 세상의 슬픔과 아픔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마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품어 안게 해주십시오. 맑아서 서러운 이 가을날, 주님,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물들여주십시오. 아멘. (10/8)

 

하나님, 세상을 만드신 후 '보기에 좋다'고 감탄하며 기뻐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청명한 대기와 아름다운 가을산을 보며 주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신비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눈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리면, 폭력과 더러움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고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신 주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함께 비스듬히 기댄 채 함께 살아가라고 지어주신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지옥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 하여 무시하고, 허드렛 일을 한다 하여 이웃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어찌 해야 합니까? 주님, 가진 것을 자신의 존재의 크기로 생각하는 무지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 이 가을에 우리 영혼이 깊어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10/15)

 

하나님, 마음이 스산하여 김현승 시인의 시집을 들척이다가 "감사하는 마음-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라는 구절과 만났습니다. 오 주님, 오늘 우리 마음이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또한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임을 이제야 확연히 알겠습니다. 자기 확장의 욕망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노랗게 혹은 빨갛게 물들다가 때가 되면 훌쩍 허공 중에 몸을 던지는 저 낙엽의 자유로움이 부럽습니다. 주님, 이제는 홀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더불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게 해주십시오. 우리 눈에 덧씌워진 욕망의 비늘이 벗겨져 이웃의 모습으로, 그리고 자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뵙게 해주십시오. 아멘. (10/22)

 

하나님, 곱게 물든 단풍을 보며 '참 좋다'를 연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습니다. 쓸쓸함과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줄 수 없을만큼 분주하게 살아가는 이들 생각에 쓸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라도 아름다움 앞에 멈춰서는 이들로 인해 안도했습니다. 하나님, 사람과 더불어 정원을 거니셨던 그날이 그립습니다. 함께 경탄하며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됨의 근본이 아닙니까? 분주하다는 핑계로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인위적인 불빛에 길들여져 하나님이 공중에 달아놓으신 달과 별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에 정신 팔려 대지에서 솟아나오는 기적에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눈을 여셔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하시고, 삶이 은총임을 날마다 자각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10/29)

 

하나님,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이 만추의 넉넉함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이 계절을 붙잡아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기에 '지금'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이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 불안 때문에 오늘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십시오.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시고, 다가오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맞아주는 넉넉함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입동을 맞으며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마음이 더욱 스산한 우리의 이웃들이 많습니다. 분주함과 피곤함을 핑계 삼아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자신의 삶을 짐처럼 여기는 이들 곁에 다가가 가만히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영혼의 온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11/5)

 

하나님,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죽음의 기운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몸이 아픈 이들, 낙심한 이들,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 모든 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청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날이 차가워질수록 별빛 더욱 청명하게 빛나듯, 혼돈의 세상 속에서도 주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빛을 환히 비치며 살게 해주십시오. 고통과 절망이 강요되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명랑하게 받들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가 분열과 파괴로 우리를 강박하는 힘들을 해체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사랑의 현존 앞에 머물게 해주시고, 언제나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11/12)

 

하나님,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니 어지럽기 그지없지만, 지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신을 벗고 엎드렸던 모세처럼 우리도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릴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 부끄럽습니다. 신앙의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영혼이 더 맑고 깊고 높아져야 하는 데, 우리는 여전히 옛 삶의 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오후 네 시의 쓸쓸함 같은 영혼의 허깃증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를 새롭게 빚어주십시오. 하루를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하시고, 상황이 어려워도 단호하게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해 주시고,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혀 주십시오. 아멘. (11/19)

하나님, 기다림의 초 하나를 밝혀놓고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어둠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테러의 소식이 들려오고, 인종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으로 세상은 거듭 찢기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추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욕망을 신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보듬어주라고 우리 앞에 이끌어주신 이웃들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무력한 회의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주님, 그러하기에 우리는 주님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지극한 어둠 속에서 빛으로 임하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평화 없는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오십시오. 오셔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아멘.(11/26)

 

하나님, 기다림의 초 두 개를 밝혀놓고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덧거친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동안 우리 영혼은 어둡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정 깊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사소한 일에도 화부터 내는 우리들입니다. 진득하게 삶이 제시한 숙제를 푸는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결과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깊이가 없습니다. 주님, 우리 속에 불을 밝혀주십시오. 하나님, 저 베링해에서 일어난 명태잡이 어선이 침몰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돈을 벌어 가족들을 잘 건사하겠다는 일념으로 배를 탔던 이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님의 품으로 그들을 안아주십시오.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마다 몸을 곱송그린 채 잠을 청하는 이들 곁에 다가가 작은 온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12/3)

 

하나님, 기다림의 초 세 개를 밝혀놓고 주님을 기다립니다. 거리와 상가에 인공의 불빛이 휘황한데도 우리 마음의 어둠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저 사나운 짐승들을 잠재우고 이제는 하늘빛 고요 속에 조용히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차가운 겨울 바람만큼이나 차갑습니다. 우는 이들은 여전히 울고 있고, 외로운 이들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몸을 곱송그린 채 선잠을 청하는 이웃들은 추운 겨울이 서럽기만 합니다. 주님, 삶이 어렵다는 핑계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외면하곤 했던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무정함을 꾸짖어 주시고, 고백을 삶으로 번역해내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함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물이 빠져나간 서해바다처럼 쓸쓸하게 들려옵니다. 주님, 이제는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삼아주십시오. 아멘. (12/10)

하나님, 며칠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옷깃을 여민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따뜻한 곳을 찾아들어갔습니다.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한과 강풍 속에서도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골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노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습니다. 차마 왜 이런 추위 속에서도 일하시냐고 물을 수 없었습니다. 생존의 절박함에 내몰린 이들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신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가 그들의 품이 되어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역사의 봄을 앞당기기 위해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녀린 꿈을 지켜주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시대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주님을 만나러 우리도 낮은 곳으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12/17)

 

하나님, 한 해의 마지막 주일 아침입니다. 살아온 날 돌아보면 어지럽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울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터져나오는 울분을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냐고 항의하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시련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든든히 붙들고 계신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지금도 거리에서, 철탑 위에서, 쪽방에서 한뎃잠을 자며 역사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땅의 교회들이 풍요로움에 중독된 채 자족의 노래만 부르지 말게 해주시고, 구유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주님,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 우뚝 서게 해주십시오. 아멘.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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