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 2014년 06월 09일
작성자 김기석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불화가 그친 적은 없었다. 카인의 후예들이 빚어내는 삶의 풍경은 갈등과 질시 그리고 폭력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테러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살아간다. 대규모 살상이 벌어질 때마다 매스컴은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재빨리 숫자로 치환하여 보도한다. 숫자로 환원된 사람은 더 이상 인격이 아니다. 수형자들이 수인번호를 부착하고, 군인들이 가슴에 군번을 부착하는 것은 그 시간 이후 그들의 개인적 특질은 더 이상 존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국의 어느 시인은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고 말했다. '아라비아 숫자'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암암리에 매겨지는 서열을 가리키는 은유일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연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심지어는 자동차의 배기량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아둥바둥 살아간다. 이웃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는 물론 없다. 관심은 오직 자기에게 집중될 뿐이다. 자기 중심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평화는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저 먼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랑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들은 사랑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의 역설적 무능을 조롱한 바 있다. 추상적 관념으로서의 사랑은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로서의 사랑은 수고와 희생을 요구한다. 사랑을 말하는 데는 익숙하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무능하다. 오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선 혹은 전장에서 살아간다. 평화로운 삶을 꿈꾸지만 지금 평화를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개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국가간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보면 가장 가까운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한편으로는 선진국으로서 존중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거리감을 느낀다. 35년 간이나 지속된 식민지 경험 때문일 것이다. 피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설움을 몸으로 겪었던 이들은 이제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강압적 지배가 남긴 상처는 쉽게 스러지지 않는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식민지 의식 청산'이라는 과제가 완료되지 않았다. 식민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살았던 이들의 후손들과, 식민 체제에 저항했던 이들의 후손의 삶은 매우 대조적이다. 식민 체제에 동조했던 이들은 후손은 기득권을 한껏 누리며 살지만, 일본에 저항했던 이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식민 체제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똑같은 전범국가였던 일본과 독일이 전후에 보인 태도를 비교하곤 한다. 독일이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사죄하고 피해를 입힌 국가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다하고 있는 데 비해서 일본은 침략을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친절하고 겸손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위험하다는 게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의식이다. 최근의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양국 간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전시에 동원되었던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조롱하는 말이 당국자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혐한류의 흐름을 부추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기독교는 이런 현실에서 어떤 반응을 할까? 나는 일본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몇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따름이다. 한국인들은 대개 우찌무라 간조나 가가와 도요히꼬를 통해 일본 기독교를 바라본다. 성서를 철저히 논구하고, 또 성서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일본 기독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중일 때 '요한계시록 강의'를 통해 일본 군국주의 체제를 맹렬히 비판하였던 야나이하라 다다오도 떠오른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사회적 영향력은 크다고 알고 있다. 신학을 공부한 이들은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책은 서구신학의 소개에 급급하던 한국신학계에 창의적이고 토착적인 신학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그런데 넓은 의미의 일본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인상을 만들어낸 이들은 소설가들이다. 한국의 많은 평신도들은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탐독하면서 신앙의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의 글은 신앙의 언어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앙인들, 특히 신학도들에게 누구보다 깊은 영향을 준 작가는 엔도 슈샤꾸였다. 다소 진보적인 신학을 하는 신학교에서는 그의 <침묵>, <사해의 호반에서>, <깊은 강>, <예수의 생애>, <그리스도의 탄생>과 같은 책을 필독서로 지정했다. 그가 그려보이는 예수의 모습은 서구 신학에 익숙한 이들이 보기에는 낯선 존재였다. 승리주의적 신앙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의 인물들은 패배자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일본 사회에 대해서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 사람조차도 일본 기독교에 대해서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일본 기독교는 맛 잃은 소금처럼 변해버린 한국 기독교와 다르다는 인식이 크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개 겸손하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느 나라에 속해 있든지 기독교인들의 영원한 조국은 하나님 나라이다. 민족주의를 넘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기독교인과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조화롭고 평화로운 양국 관계 형성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예수는 지배와 폭력을 통해 평화에 이를 수 있다는 제국주의 담론을 거절했다. 섬김과 비폭력을 통해 얻는 평화만이 영원함을 가르쳤다. 일본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힘의 우위를 통해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국가의 선전에 저항해야 한다. 힘은 언제나 지배의 욕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가 연대하듯, 한국 기독교와 일본 기독교가 양국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해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야 할 때이다.


한국의 시인 박노해는 <평화 나누기>라는 시에서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총과 폭탄 앞에서도 온유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씨를 뿌릴 때이다. 국가주의라는 척박한 토양을 신앙의 쟁깃날로 갈아엎고 평화의 씨를 심는 노력 없이는 양국간의 미래도 없다. 일본의 동화작가인 하마다 게이코는 <평화란 어떤 걸까?>라는 아름다운 책 말미에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네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너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더 나아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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