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만들어진 우상 2014년 06월 02일
작성자 김기석

 만들어진 우상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이 권태로워 보인다. 짝을 이루어 이 골목 저 골목 찾아다니는 선거 운동원들의 발걸음도 무겁기만 하다. 자원봉사자들도 있지만 일당을 받고 동원된 이들도 많은가보다.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선거 운동원 노릇을 하고 있다며 변명삼아 투덜거리는 사람도 보았다. 하루에 몇 번 울리지 않는 내 전화기가 요즘은 제법 분주하다. 지방 선거에 나선 이들 덕분이다. 하지만 수신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송되는 문자 메시지는 불쾌감을 자아낼 뿐이다. 문자에 담긴 메시지는 후보자의 정책이 아니라 상대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의혹제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다른 이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한 전장이 되어 버렸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세상 물정의 사회학>을 쓴 노명우는 "매너를 지킬 때 자부심을, 지키지 못할 때 수치심을 느끼는 문명인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문명인은 '쪽팔림'에 민감하다"고 말한다. 선거 공학자들은 이런 사회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정책을 개발하는 번거로움보다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말살시키는 편이 수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당선되었다 하자. 과연 그런 과정을 통해 당선된 이들이 따뜻한 세상, 아무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들은 어쩌면 국민들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속일 수 있는 먹잇감으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입후보자 중에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죄 경력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정당 언저리를 기웃거리면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환하게 익혔기에 범과기록의 공개라는 모험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들의 시선은 국민을 향하지 않는다. 자기를 공천해 줄 권력자를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해서 권력자는 만들어진 우상이 된다. 그 우상 앞에 절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오리무중이 되고, 국민들의 정치 혐오는 심화된다.


주전 5세기의 참주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를 공명심이 없다고 보기보다는 쓸모없는 자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 말의 덫에 걸려 선거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노라면 마치 구정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것 같은 불쾌감을 느낄 때가 많다. 선거에 나선 이들의 말이 온통 남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두렵게 여기지 않도록 만든 책임은 유권자들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에 나선 이들이 어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려는지 면밀히 살피지도 않은 채 '여당이니까 혹은 야당이니까', '우리 지역 사람이니까', '종교가 같으니까' 찍는 '묻지마 투표'가 반복되면서 한국 정치는 중병에 걸렸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바벨론 포로기의 예언자인 에스겔은 양들의 은유를 통해 타락한 지도자들을 준엄한 어조로 꾸짖었다. "살진 양들아, 좋은 초원에서 뜯어 먹는 풀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먹다 남은 풀을 발로 짓밟느냐? 너희가 마시는 맑은 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마시고 남은 물을 발로 더렵혀 놓으냐? 내 양 떼는 너희가 짓밟은 풀을 뜯어 먹으며, 너희가 발로 더럽혀 놓은 물을 마시고 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번 지방 선거는 구접스러운 이들은 걸러내고, 역사적 소명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이들을 뽑는 국민적 축제가 되어야 한다. 마음의 무더위를 식혀 줄 소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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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4 06-08 04:06)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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