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혼돈의 물 앞에서 2014년 06월 02일
작성자 김기석

 혼돈의 물 앞에서


며칠 전 일본의 평화 노래꾼인 류타로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크게 알려진 가수도 아닌데 그 소식이 아프게 느껴졌던 것은 몇 해 전 우리교회에서 열린 '한일생명평화콘서트'에서 그가 열정적으로 불렀던 '이젠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핵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핵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 지쳤던 것일까? 그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인근의 식물들이 겪는 유전적 변화를 보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우리에게 친숙한 꽃들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뒤틀려 있다. 그 풀꽃들은 핵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호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꽃들은 '이래도 핵발전에 집착할 텐가?'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핵문제는 앞으로 태어날 세대의 눈과 자연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인다. 경제 발전을 지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이들은 핵 문제를 경제 논리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도박이다. 에너지 집약적인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핵발전소가 폐쇄되면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경제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을 더 큰 공포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원자력에너지는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쉽게 동의하고 만다. 


물론 일시에 핵발전소를 폐쇄할 수는 없다. 서서히 그런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선진국들은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심의 확정한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은 핵발전소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정부는 지금 핵발전소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죽음의 독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은 경제 논리가 생명 논리를 압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표이다.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핵 발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다.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고, 핵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을 채굴하고 가공하고 농축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인류가 핵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먼저 소비 전력을 줄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교회나 가정에서 에너지 10% 줄이기 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 다음에는 재생 에너지(태양, 바람, 지열, 바이오) 비중을 높여가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의 지붕마다 햇빛 발전소가 설치되면 좋겠다. 그것은 화석연료시대가 끝나간다는 경종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이 교회의 중대한 사명임을 가리키는 기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 중심의 사고를 하는 이들이 정치적 발언권을 얻도록 돕는 일도 매우 중요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창조 때 극복된 혼돈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혼돈은 공포감을 자아낸다. 유대교 랍비들은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혼돈의 물을 막고 있는 덮개라고 가르쳤다. 성전이 태곳적 혼돈의 세력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교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다윗이 [성전의] 토대를 닦기 위해 땅을 파 들어갔을 때, 심연의 물[‘테호마’]은 땅으로 올라와 세상을 삼켜 버리려 하였다. 그때 다윗은 열다섯 개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를[시120-135편] 불러 그들을 잠재웠다."(존 D. 레벤슨, <시내산과 시온>, 홍국평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55쪽)


신화적인 이야기이지만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이다. 교회는 바로 이런 혼돈의 물 혹은 아비소스의 문을 억제하는 덮개여야 한다. 죽음의 노래가 넘치는 세상을 이길 힘은 생명을 노래하는 이들로부터 나온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연습해야 한다. 덜 소유하고, 덜 쓰면서도 행복한 삶 말이다. '한일생명평화콘서트' 때 만났던 사진작가 오가와 테츠시의 말이 우렁우렁 들려온다. 그는 후쿠시마 인근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보물로 생각하는 것들을 사진에 담아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풀꽃들이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그리고 아이들의 책과 노트, 인형 등. 그는 그 아이들의 보물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있다. 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택해야 한다.

목록편집삭제

정병철(14 06-08 06:06)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