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22 2014년 05월 06일
작성자 김기석

 하나님, 사순절 순례의 여정에 오른 모든 이들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 순례길을 가는 동안 우리 몸과 마음에 배어든 죄의 습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다운 삶으로 거듭나게 해주십시오. 삶의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예수님의 마음은 꼭 붙들게 해주십시오. 고통과 슬픔, 낙심과 후회라는 낡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참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게 해주십시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가족들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실 주님이 떠오릅니다. 주님, 순례길을 가는 동안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해주시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붙들어주게 해주십시오. 크림 반도에서 들려오는 저 무서운 전쟁의 소문이 그치게 해주시고, 애타게 평화를 구하는 이들의 소망을 뿌리치지 말아주십시오. 아멘. (3/5)


하나님, 바야흐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노란 영춘화가 우중충한 길을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고, 매화도 산수유도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저 꽃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려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납니다. 저 겸허한 순응이 눈물겹도록 고마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 삶의 누추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꽃피우는 것이라는 데, 아무리 살펴도 우리 속에 그 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아직 봄이 아닙니다. 주님, 여전히 덧없는 욕망의 거리에서 바장이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지금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을 한껏 누릴 수 있게 해주시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진실과 사랑의 승리를 믿으며 오늘도 씩씩하게 주님의 뒤를 따르게 해주십시오. 아멘. (3/12)


하나님, 깃을 치며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이 경쾌한 아침입니다. 그 자유로운 비상을 보며 사람에게도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땅의 인력에 이끌려 살다보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습니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라는 말씀이 새삼스러운 나날입니다. 주님, 사순절 순례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삶에서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자꾸만 덜어내게 해주십시오. 이제는 우리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염려와 근심을 떨쳐버리고 저 푸른 기쁨과 감사의 하늘로 가뿐히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흘리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을 때 영혼의 하늘이 활짝 열림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아멘. (3/19)


하나님,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우는 이들은 여전히 울고 있고, 탄식하는 이들은 여전히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공허한 눈길로 하늘을 더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신이 세상을 섭리하듯 큰소리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 마음은 너무 거칠어졌습니다. 이제는 눈빛 맑은 사람, 마음 따뜻한 사람, 말이 부드러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잠시나마 그런 이들 속에 머물며 가쁜 숨을 가지런히 고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그런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시는군요. 옳습니다. 주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든 다가와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갈 수 있는 품 넓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거칠고 뾰족한 것들을 녹여주십시오. 우리 가슴에서 먼저 평화 세상이 열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3/26)


하나님, 때 이르게 피어난 벚꽃 그늘 아래서 사람들의 표정도 환하게 피었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의 얼굴도, 까르르 웃는 젊은 연인들의 얼굴도 해맑습니다. 낯선 이들조차 정겨워 보입니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깨우는 마중물이 된 것일까요?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근심거리로 인해 우리 영혼이 위축된 까닭입니다. 주님, 우리를 새롭게 빚어주십시오. 이 좋은 봄날에도 고통과 시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이 멋진 생명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함께 해주십시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어 고통의 자리,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게 해주십시오. 우리 또한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2)


하나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시던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맞아주었습니다. 군중들의 흥분된 환호성 속에서도 주님은 홀로 고요하셨습니다. 적의와 증오로 무장한 채 주님을 죽일 궁리만 하고 있던 이들의 품으로 왜 뛰어드셨습니까? 사랑과 구원의 길은 고난을 통해 열린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주님의 물새같은 고독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주님, 우리도 그 옛 제자들처럼 주님을 배신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길로 우리를 부르시지만 우리는 행복과 안락을 위해 주님께 등을 돌리곤 합니다.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자기가 한 일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 파묻힌 채 닭의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제 우리 마음 속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아멘. (4/9) 


할렐루야, 부활의 새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립니다. 우리는 이 아침을 마치 창조의 첫 아침처럼 맞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부활하심을 경축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들의 지저귐도, 바람결에 뒤척이는 나뭇잎도, 향기를 내뿜는 라일락도 생명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지금도 수난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찾아가셔서 마리아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셨던 것처럼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실의에 잠긴 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동행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지금도 긴 그림자를 끌고 걷고 있는 이들의 동행이 되어 주십시오. 디베랴 바닷가에서 빈 그물질에 지친 제자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셨던 것처럼,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찾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계신 그 자리에 우리도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4/16)


하나님,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주일 아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차마 기쁨의 노래,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가득 밀려든 슬픔과 비애와 분노를 주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 진도 앞바다, 세월호에 갇힌 가엾은 이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그들은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간절히 바쳤던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가족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눈물로 염원하는 이들의 그 시린 마음을 왜 외면하십니까? 주님, 생명 중심의 사고를 거부하는 오늘의 문명이 이런 참극을 낳았습니다. 지금 비통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죽음을 상징하던 무덤이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희망의 모태가 되었던 것처럼, 이들의 희생이 이땅에 새로운 생명 문화를 낳는 계기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16,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은 후 다시 작성한 기도문)


하나님, 라헬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나무는 푸르름을 더해가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잿빛입니다. 꽃같은 아이들의 서러운 주검이 실려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가슴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어찌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고통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배가 침몰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순간 땅도 기우뚱했습니다. 세상 여행을 갑작스럽게 마친 모든 이들을 주님의 크신 품으로 안아 주십시오. 그리고 평생 앞서 떠나간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차마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위험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이들을 징계해 주십시오. 이웃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도려내주시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이들과 함께 웃는 참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십시오. 아멘.(4/23)


하나님, 가정의 달인 5월이 열렸지만 우리 마음의 먹구름은 아직도 가실 줄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자들을 추념하기 위해 마련된 합동분향소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이들은 말을 잊은 채 영정속의 얼굴만 바라봅니다. 그들은 결코 '남'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또 다시 먹먹한 가슴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참극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을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돈벌이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인간의 무신론적인 오만을 물리쳐주십시오. 주님, 이 땅의 착한 사람들이 흘리는 저 피눈물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되게 해주십시오. 어린이주일입니다. 이 땅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자기 생을 경축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우리 울면서라도 생명과 평화의 씨를 뿌리게 해주십시오. 아멘.(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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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타(14 08-06 08:0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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