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공유지의 비극 2014년 04월 02일
작성자 김기석

 공유지의 비극


예년에 비해 꽃의 개화 속도가 빠르다. 약속이나 한듯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장관이다. 성급한 백목련은 이미 화려한 시절을 마감했다. 비둘기 몇 마리가 공원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헤집고 있다. 조심스레 대지를 들추는 새싹들의 수런거림이 궁금했나보다. 눈석임 물이 흐르는 계곡마다 생명의 교향악이 사뭇 장엄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음성도 한결 밝아졌다. 봄은 머뭇거림조차 없이 불쑥 우리 삶을 가로지르고 있다. 하지만 꽃샘 추위조차 없이 찾아온 이 봄이 왠지 불길하다.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해충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DDT와 같은 합성 살충제의 과도하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미래를 예견했다. 그는 인류가 미구에 새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앞당겨진 개화 시기를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음울한 현실의 예고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꿀벌의 대규모 폐사에 대한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그로 인해 식량생산이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도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초래할 비극에 대한 경종이 울려 퍼진지 이미 오래건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에 바빠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유장하게 흐르던 강은 그 흐름을 차단당하고, 뭇 생명들을 품어주던 숲은 훼손되고, 갯벌은 죽어가고 있다. '발전' 혹은 '개발'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힌 이들은 생태계의 신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이상론자로 폄훼하기 일쑤다.


민관합동으로 열린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를 가리켜 '암덩어리'라는 과격한 단어로 표현했다.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단어이겠지만, 이 단어는 관료들을 향한 강한 질타인 동시에 그들의 행동에 대한 지침이라 하겠다. 암은 제거되어야 할 적이다. 관료들은 일주일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52개의 과제를 성정했고, 그 가운데 41건을 즉각 수용하여 법규 개정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되는 게 마땅하다. 문제는 필요와 불필요를 분별하는 주체가 누구냐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들이 많다.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있던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 불이익을 당했다며 나서고 있다. 가라오케나 단란주점 등 청소년 유해 시설만 없다면 학교 주변에 관광호텔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의료 민영화의 전단계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원격진료도 곧 실시될 것 같다.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이후 산림 생태계 복원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보류되었던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장 건립도 조만간 시작될 것 같다. 이제 남한 최고의 원시림이라 알려졌던 가리왕산은 속절없이 파괴될 처지에 놓였다.


공공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마련되었던 이런저런 규제가 행정 편의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규제개혁철폐는 절대적 선이 아니다. 해야 할 것은 해야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홍수 통에 오폐수를 무단방류하듯 개발 혹은 발전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는 이들이 많다. 안병무 박사는 특정한 세력이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적인 것을 파괴하는 것, 즉 공의 사유화를 인간의 뿌리깊은 죄라 말했다. 개럿 하딘이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도 비슷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특정한 주인이 없는 공공재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이용하거나 소비함으로써 가장 빨리 제 기능을 상실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뿐이다. 성경은 그래서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이 엄연한 사실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봄을 봄으로 즐길 자격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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