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다시 부르는 노래 2014년 02월 26일
작성자 김기석

 다시 부르는 노래


네 살 소년 마르완, 끝날 줄 모르는 내전을 피해 부모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버린 요르단 아이. 마르완은 불모의 땅 사막을 며칠 동안 혼자 걸었다. 유엔난민기구 직원들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스틸 사진 속의 마르완은 울지 않았다. 자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길을 슬쩍 비껴내며 의젓하게 서 있었다. 마르완이 왼손에 들고 있었던 그 비닐봉투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허기지고 지쳤을 텐데 그리고 두려웠을 텐데 마르완은 부모가 맡겨준 그 봉투 하나를 끝까지 지켜냈다.


시인 김영래의 시를 찾아 읽는다. "―그 먼 길, 모래바람 속에서/네가 두 팔로 안고 오는 것이 무엇이냐?/말하라. 무엇이냐?/― 한 주검이 문턱이 되어 문 안으로 우리를 인도한 뒤/죽음은 국경 없는 이정표가 되었네."(<잠들지 않는 자장가> 부분) 마르완과 시인은 고통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렇게 연결되고 있었다. 저 어린 소년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와 이념 그리고 종교가 참 슬펐다.


아주 옛날 '또 다른 마르완'이 사막을 배회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의 후처인 하갈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의 서자庶子로 살아왔지만 이삭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하갈과 아들은 먼저 이름을 박탈당했다. 상속권 다툼을 염려한 사라는 그들을 '저 여종과 그 아들'로 칭한다. 친숙한 이름이 아닌 대명사로 지칭되는 순간 관계도 변하게 마련이다. 장애가 된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들은 언제라도 지워질 수 있다. 이스마엘은 마침내 어머니 하갈과 더불어 광야로 내몰렸다. 잔인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먹을거리 한 부대와 물 한 부대 뿐이었다. 모자는 브엘세바 빈 들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다. 음식과 물이 다 떨어지고 살아갈 여망조차 사라지자 하갈은 지친 아이를 덤불 아래 눕혀놓고는 저만치 물러가 비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놀란 아이도 따라 울었다. 바람과 돌들만이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다가와 그들을 위로하시고, 미래를 약속해주셨다. 고통의 심연에서 솟아난 희망의 불빛, 그 불빛은 오늘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까


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불매(boycott), 투자회수(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를 골자로 하는 BDS 운동은 한 팔레스타인 인권단체의 제안으로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에 정착촌을 만들고,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운 분리 장벽이 모든 사단의 출발점이었다. 높이 6미터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혹은 수확을 위해 분리장벽을 매일 통과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되고 있다. 위협과 욕설 그리고 모욕이 일상인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도무지 그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과 연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BDS 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반향을 얻고 있다. 네덜란드 연금 펀드는 5개의 이스라엘 은행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투자금이 유대인 정착촌 건설 지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유럽 연합에 속한 여러 나라들은 이스라엘에서 수입하던 농산물의 양을 눈에 띄게 줄였다. 건설 인력을 제공하던 루마니아 정부는 건설 인력의 추가 파견을 거부했다. 캐나다의 몇몇 대형교회들은 이스라엘 업체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학 협회는 이스라엘 대학들과의 협력 관계를 단절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것이 또다른 형태의 반유대주의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이 흐름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세상의 억압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분명 희망의 조짐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어둠과 겨루며 비틀거리던 젊은 시절 벗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 그 잊혀졌던 노래가 다시 떠오른다. "혼자 소리로는 할 수 없겠네/둘의 소리로도 할 수 없겠네/둘과 둘이 모여 커단 함성 될 때/저 어리석은 자 깨우칠 수 있네". 가슴 벅차게 불렀던 노래는 '둘과 둘이 모여 강한 힘이 될 때 저 굳센 장벽을 깨뜨릴 수 있네', '둘과 둘이 모여 세상 하나 될 때 저 억눌린 사람 참 자유 얻겠네'로 이어진다. 마르완과 같은 아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