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메피스토펠레스의 해법 2014년 01월 27일
작성자 김기석

 메피스토펠레스의 해법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 제1막은 황제의 궁성을 보여준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한 나라에 파우스트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찾아간다. 황제나 관료들이나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었다. 나라가 그 지경이 된 까닭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재상 뿐이다. 그는 만백성이 사랑하고, 요구하고, 소망하고, 없으면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정의인데 그것이 사라져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아! 온 나라가 열정에 걸린 듯 들끓고, 악이 악에서 부화되고 있은즉, 인간 정신의 오성이, 심성의 선량함이, 노동의 열의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재상은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하는 해법으로 정의의 회복을 제시한다.


그러나 황제는 재상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담보로 하여 돈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홀딱 넘어간다.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궁내부대신이 "궁중에서 필요한 재물만 만들어 준다면, 약간의 부정이야 눈감아 줄 용의가 있다"고 말하자 국방장관은 "병정들은 돈의 출처를 묻지도 않을 거"라며 맞장구친다. 그렇게 불의의 연대가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모두 돈의 확고한 포로가 되고 만다. 정의 대신 손쉬운 해법이 제시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소비에 탐닉한다. 문제는 행복의 환각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친절한 자본주의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소비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고안해냈다. 신용카드가 그것이다. 없는 것을 담보로 하여 돈을 만들어냈던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법처럼 신용카드는 욕망은 굳이 유보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소비사회의 신민이 된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는 이미 새로운 결제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문을 여는 티켓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새 우리를 확고하게 얽어매는 거미줄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정보는 소상하게 수집되었고, 수집된 정보에 따라 분류되었다. 신상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금융거래내역, 신용등급, 재산등급, 소비성향, 직업까지도 다 드러났다. 그래도 우리는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런 비밀스런 정보가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만 알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신용' 카드 아닌가.


그런데 그런 믿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가 드러났다. 우리들 각자에 대한 정보가 쉽게 빼돌려져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한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자기에 관한 정보도 새나갔는지 확인해보고, 카드를 해지하기도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분은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을 따진다"며 정보 제공에 관한 동의서를 잘 살피지 않는 국민들을 어리석은 자로 몰았다. 울고 싶은 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잘 하란다. 국민들의 불안, 불편, 불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의 국정 과제로 삼은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아무리 사세가 급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경제적 이득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단 말인가. 설사 그런 것을 정밀하게 계산해 보는 것이 정치인들의 과제라 해도 차마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수단이 목적으로 변하는 순간 세상은 천박해진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먹어야 사는 존재이다. 예수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생의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환원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어느 분은 현대인들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살기에 돌가슴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활보하는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정의를 해법으로 제시했던 재상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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