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20 2014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자비로우신 하나님, 목소리 큰 사람들 속에서 사느라 우리는 지쳤습니다. 자기의 옳음을 강변하는 이들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습니다. 자연 만물은 저마다의 빛과 소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건만, 유독 사람은 그런 다양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에 우리는 너무나 미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정을 느끼며 살고 싶은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냉랭한 세상, 저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그 품의 온기를 받아 새 사람으로 깨어나,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명확하게 사고하고, 용기 있게 말하고, 단호하게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11/6)


자비로우신 하나님,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 치는 이들을 봅니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거리로 내몰린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문득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 했습니다.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해달라던 시인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삼겠습니다. 오늘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 오늘 외로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 오늘 하는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 곁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겠습니다. 필리핀에 불어온 태풍으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한 도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 선악을 가리지 않는 자연의 역습 앞에서 망연자실한 이들을 붙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사랑과 연대와 나눔을 통해 그들의 벗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11/13)


자비로우신 하나님, 길고 긴 오순절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린 채 골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내렸던 성령의 강한 역사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그들 속에 깃들자 그들은 골방 문을 박차고 나가 예수가 주님이심을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당당한 주체가 되어 세상에 맞섰습니다. 죽음의 위협으로도 그들의 증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영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 독립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 지금 우리는 무기력합니다. 불의를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고, 고통받는 이웃을 보면서도 함께 아파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지금 우리 현실은 마치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뼈의 골짜기 같습니다. 주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일으키시어 하늘 군대로 삼아주십시오. 아멘. (11/20)


자비로우신 하나님,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이 장엄해 보이는 계절입니다. 찬 바람 탓인지 사람들은 몸을 옹송그린 채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재빨리 지나갑니다. 그 곁에 선 나무들은 맨 몸으로 겨울 바람과 만나고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 바장이면서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기다림의 초 하나를 밝혀 놓고 우리 마음 가운데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척박한 역사 속에 돌입하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어둠이 지극한 이 땅을 굽어 살펴주십시오. 자기 이익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련한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윽박지르는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어 주십시오. 주님, 선하게 사는 것이 더 쉬운 세상을 이루고 싶습니다. 속히 오셔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길이 되어주십시오. 아멘. (11/27)


자비로우신 하나님, 대림절 초 두 개를 밝혀놓고 스위치를 내려 전등을 껐습니다. 잠시 어두웠지만 금방 주변이 환해졌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빛, 주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오고 계신지요? 우리가 일으키는 작은 움직임에도 일렁이는 촛불을 보며 속절없이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보는 듯 싶어 가슴이 아렸습니다. 하지만 촛불은 이내 몸을 곧추세워 수직의 중심을 잡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는 너무 땅의 현실에만 매여 살아갑니다. 혼돈과 흑암과 공허가 가득 찬 세상에서 바장이며 사는 동안 하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 일렁이다가도 금방 중심을 잡는 저 촛불처럼 우리도 중심을 향한 끈질긴 지향을 회복하게 도와주십시오. 빛 없는 나락을 향해 속절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땅의 교회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스스로 가난해지셨기에 빛이 되셨던 주님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12/4) 


자비로우신 하나님, 대림절 초 세 개를 밝혀놓고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길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사람들처럼, 우리 마음에 쌓인 잡다한 상념과 기억과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 오실 길을 닦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마음이 고요해지질 않습니다. 전신주를 잉잉 울게 하는 바람처럼 부끄러운 기억들이 우리를 휘감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만삭의 산모가 몸을 눕힐만한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베들레헴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내면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더럽다 마시고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십시오. 오셔서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녹여 새 사람으로 빚어주십시오. 세상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무릎을 굽힐 줄 아는 참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외롭게 하는 죄를 더 이상 범치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12/11)


자비로우신 주님, 시름에 겨워 한숨을 내쉬던 이들이 문득 어둠을 배경으로 맑게 빛나는 별빛과 눈맞춤하는 일은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지금 우리는 샛별로 떠오르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사람을 개별화시키고 도구화시키는 세상, 모두를 외롭게 만드는 세상에 분노한 한 젊은이가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인사가 많은 이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며 '나 여기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세상 위를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를 덮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가슴에서 돋아나는 열패감을 잘라내고, 저마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멋지고 신명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고통받는 이들 곁으로 다가가고, 기꺼이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줌으로 우애와 사랑이 넘치는 새 세상을 만들어갈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12/18)


자비로우신 주님, 한 해가 이렇게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쉬움 속에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니 어지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의 기억들은 손사래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부끄러움과 후회뿐입니다.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섬기지 못했습니다. 아린 가슴을 안고 찾아온 이들을 살뜰하게 품어 안지 못했습니다. 영혼의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오히려 마음이 옹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해야 할 일을 반도 끝내지 못한 것 같은 조급함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못났다 내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주님, 이제 넘어진 자리를 딛고 일어나 진리의 선한 싸움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우리 속에 불어넣어주십시오. 아멘.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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