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도피성을 마련한 까닭 2013년 12월 27일
작성자 김기석

 도피성을 마련한 까닭


성탄절 무렵, 세상은 어두웠다.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두 살 미만의 아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두려운 소식을 접한 헤롯왕이 군대를 보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크고 밝은 별과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살해당한 아기들과 그 부모들의 피울음이 채웠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신구교 간의 갈등이 영주들간의 전쟁으로 비화할 무렵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헤롯의 영아 학살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이미 죽임을 당한 아기들, 공포에 질린 사람들, 근육질의 군인들이 벌이는 광기어린 만행, 이미 넋을 잃은 듯 보이는 여인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좀처럼 그 소리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루벤스는 미구에 닥쳐올 폭력의 세기, 관용과 사랑 대신 광기와 권력욕이 넘치는 세상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삶이 힘겹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과 연말을 고대하던 이들의 소박한 꿈은 또 다시 짓밟히고 말았다. 지난 22일 민주노총 본부가 세들어 있던 경향신문사 건물은 5000명이 넘는 경찰에 의해 짓밟혔다. 철도노조 집행부를 체포하기 위한 전격 작전이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힘을 통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청와대의 의지인지 공을 세우고 싶은 이들의 과잉행동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이 아닌 체포영장만 가지고 진행된 그 전격작전은 대화나 타협의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한국노총도 노정 간의 대화 단절을 선언했다. 치킨 게임처럼 누구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정부는 철도를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의 토대가 허물어져 왔기 때문이다. 불신과 불통의 상황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발전 강박에 사로잡힌 이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 효율과 생산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세상은 이드거니 기다리면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싫어한다. 비효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진다. 기득권은 그들에게 불온의 낙인을 찍는다. 낙인 찍힌 이들은 때로는 존중받아야 할 시민이 아니라 작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통에서 비롯된 불신이 깊어갈 때 세상은 위험한 곳으로 변한다. 외국의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위험사회나 유동하는 공포는 마치 안개처럼 확고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광경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도피성이 떠올랐다. 압제의 땅인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은 그들이 머물러 살게 될 땅 곳곳에 도피성을 마련하라는 신의 지시를 받는다. 미워한 일이 없는 이웃을 뜻하지 않게 죽인 사람, 즉 미필적 고의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피살자의 친족들에 의해 사적인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도피성은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야 했다. 그래야 도망자가 피살자의 친척들에게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가해자도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도피성은 철통같은 경계가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금기의 장소였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곳을 범할 수는 없었다. 그 규칙이 깨지는 순간 사회는 피의 보복이 난무하는 전장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작하게 변했다 해도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몇 군데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음, 상대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절제, 이런 것들이야말로 평화로운 세상의 문지방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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