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님이 오신다 2013년 12월 07일
작성자 김기석

 님이 오신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과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줌이 급해진 신랑이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다. 신랑은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붙잡는 거라고 생각하고는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런 후 40년인가 50년인가 지나서 우연히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잠시 궁금한 생각이 들어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 보았다.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고스란히 앉아 있었다. 안쓰러워 그 어깨를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만 남은 신부. 그것은 한恨일까, 원寃일까, 해원解寃일까?


이 이야기는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신부>라는 시를 거칠게 인용한 것이다. 짧은 시이지만 한국인의 원형적 정한의 뿌리를 그리듯 보여주고 있다. 대림절이 다가오면 언제나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슴 저린 경험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기다림이 때로는 형언키 어려운 권태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발을 벗었다 신기도 하고, 모자를 벗었다 쓰기도 하고,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들은 안간힘을 다한다. 얼마나 무료했으면 '우리 심심한데 저 나무에 목이나 매달까?'라고 말할까. 희곡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지 잘린 나무는 봄을 기약할 수 있는 그들의 내면 풍경이 외화된 것이리라.


기다림은 매임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만나기로 한 그 장소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설렘이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다림은 부자유가 된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주님을 학수고대하던 초대교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외적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 오신다던 주님은 오지 않고,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절망의 그늘 또한 짙어지지 않았겠는가. 자꾸만 무너져 내리려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오십시오, 주 예수님!' 하고 기도하던 이들의 심정은 절박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상업화된 절기가 되어버린 오늘 우리는 기다림을 말하면서도 절박하지 않다. 절박함이 없다면 기다림은 그저 몸짓이거나 습관이 된다.


오늘 우리는 정말 예수님의 강림을 기대하고 있나? 기다린다면 지금처럼 태평하게 지낼 수는 없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어떻게든 예수 정신을 붙들려고 하는 이들은 맥을 놓고 있을 수 없다. 황지우 시인은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시의 화자는 기다림의 설렘과 안타까움을 노래한 후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기다림이란 사랑하는 이를 맞이하기 위해 그가 오는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이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땅한 자세이다.


이 절기에는 함석헌 선생의 시 <님이 오신다>도 기억할만하다. 시의 화자는 님을 기다린다면서 그만 늦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깬 그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온 방안은 허투루 늘어놓은 것들로 어지럽기 그지 없다. 쓸고 닦고 고치고 물을 뿌리고 묵고묵은 먼지를 다 닦아 내려고 서둘지만 마음만 바쁠 뿐 집은 여전히 엉망이다. 그런데 아뿔사, 님이 오셨다는 기별이 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며 님은 그를 다독이며 말한다.  "이 애 이 애 걱정마라,/나도 같이 쓸어주마,/나 위해 쓸자는 그 방/내가 쓸어 너를 주고,/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주님이 오시자 밝히자면서 못 밝힌 방이 저절로 밝아지고,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이 저절로 맑아진다. 은혜의 세계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늦잠에서 깨어난 후의 당혹스러움이 없었더라면, 닦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죄송스러움이 없었더라면 그 은혜의 세계는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님이 오신다. 크고 안락한 예배당이 아니라 거리에서 찬 바람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 잉여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조용히 다가오신다. 그분을 진정으로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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