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19 2013년 10월 31일
작성자 vorblick

 주님, 마치 거짓말처럼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눅진눅진했던 이불을 햇빛에 널어 말리듯, 이제는 느른했던 삶을 추슬러 단정하게 매조지하고 싶습니다. 하오나 주님, 지금 우리 사회는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시끄럽습니다. 그릇된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새삼 느끼는 나날입니다.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그 엄혹한 시기에 주님은 사랑과 나눔, 그리고 돌봄과 섬김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이라 일러주셨습니다. 백향목처럼 우뚝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아니라, 겨자풀처럼 보잘 것 없는 이들이 어깨를 겯고 함께 만들어가는 벗들의 나라가 이땅에 속히 오게 해주십시오.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회의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주님을 믿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 이 초가을에 우리를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9/4)


주님, 세상 일이 하도 복잡하여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나날입니다. 가끔은 주인을 찾아왔던 종들의 심정이 되어 '가라지'를 남김없이 뽑아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밀과 가라지의 뿌리가 엉켜 있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곤 합니다. 주님, 세상에는 불의로 배를 불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둡고 음습한 이기심을 정의로 포장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정의를 지향하는 이들은 맥이 풀리고, 힘 없는 이들은 더욱 서럽고, 자기 욕망을 이룬 이들은 득의를 미소를 짓습니다. 주님, 땅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 우리를 일으켜주십시오. 사랑과 관대함으로 이 땅의 증오와 폭력을 이겨낼 힘을 주십시오. 평화를 위해 말하고 일하려는 이들을 보내주십시오. 한가위 명절이 다가옵니다. 반가운 이들과 만나, 우리가 잃어버렸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9/11)


주님, 푸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그 기세좋던 생장의 기운을 잃고 조금씩 누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급한 나뭇잎들은 서둘러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빚어내는 삶의 풍경이 어떠하든 계절은 절서에 따라 조화롭게 운행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왜 그런 생명의 리듬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때를 앞당기려는 성급함 때문에 조급해지고, 때를 늦추려는 안간힘 때문에 추해집니다. 한 손에 과자를 들고도, 다른 아이의 손에 들린 과자 봉지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도 지금을 감사함으로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 누런 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들판 앞에 서면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집니다. 우리도 그렇게 무르익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전쟁과 테러의 소식이 들려오고, 자연재해 소식도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주님,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꿈이 스러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아멘. (9/18)


주님, 우리 마음을 주님께만 집중하는 일이 왜 이리도 힘겨운지요? 이 고요한 주일 아침에도 자발없는 우리 마음은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로 인해 어지럽습니다. 산란한 마음과 피로감은 빛을 사모하는 우리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 사실 하나만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부디 우리가 주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뒤로 숨지 않게 해주십시오.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 소식이 들려오고, 사회적 약자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야수처럼 변해가고 있는 현실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실 분이 주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의 마음 아픔을 덜어드리기 위해 오늘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9/25)


주님, 우리가 감사의 기도를 올린 후 먹는 음식은 그 자체로 성찬입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익어가는 감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노랫소리를 들을 때 우리 영혼은 고양됩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의 노래는 우리의 스산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위안입니다. 고요히 흘러가는 냇물은 우리 마음의 울울함을 씻어내는 명약입니다. 주님, '두 이레 강아지 만큼 은총에 눈을 뜨니 세상에 말씀 아닌 것이 없더라'는 어느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나날입니다. 하오나 주님, 눈을 돌려 우리 현실을 바라보면 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거친 말, 냉소적인 표정, 조롱, 가차없는 편가르기에 지친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를 심어주십시오. 아멘. (10/2) 


주님, 우리 마음이 너무나 옹색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만연한 불의에는 침묵하면서도 가까운 이들의 작은 실수 하나는 너그러이 용납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고요함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살이에 지쳐 우리 마음은 묵정밭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직면했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은 다름 아닌 우리의 황폐해진 마음이었습니다. 주님, 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은혜의 단비를 내리시어 우리 마음을 적셔주시고,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져 새롭게 빚어주십시오. 지금 우리 곁에서 울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게 해주시고, 불의에 저항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게 해주십시오. 세상 도처에서 평화의 씨를 심느라 땀흘리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사막에 생명의 강이 흐르고, 광야에 꽃이 피는 기적이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10/9)


주님,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나날입니다.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 산을 바라보다 문득 '참 좋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르는 한편, 이 아름다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현실이 떠올라 아팠습니다. 세상 만물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소박하고 성실하게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유독 사람만 걸신 들린듯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영혼의 헛헛증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주님, 만물이 그 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이 계절에 '너희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인력을 끊고 주님께 나아가, 우리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비끌어매게 해주십시오. 주님, 우리 마음을 그 크신 은총으로 곱게 물들여 주십시오. 아멘. (10/16)


주님,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시며 얼마나 애가 타십니까?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가 오히려 진리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는 말이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회막에 임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현존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렸던 광야 공동체를 떠올립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품부된 삶의 몫을 온전히 누리며, 우정과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소비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이제는 복음이 주는 참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496년 전 마틴 루터를 세우셔서 진리의 무덤이 된 교회를 개혁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신앙 양심에 따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굳게 붙드는 주님의 일꾼들을 세워 이 땅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의 부름에 응답하며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10/23)


주님, 11월의 첫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곱게 물들었던 단풍이 한잎 두잎 떨어져 내립니다. 그 고운 추락이 왠지 눈물겹고 또 고맙게 느껴집니다.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듯 한사코 움켜쥐기만 하던 삶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었다가,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순간을 한껏 살아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 고난과 위로, 빛과 어둠이 갈마드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자주 비틀거리곤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들다'고 말하고는 괜히 비감해집니다.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데려왔을 때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의 그런 손길이 그립습니다. 주님, 우리를 치유하시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어 새로운 존재로 빚어주십시오. 아멘,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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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3 11-17 09:11)
목사님의기도에함께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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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13 12-08 02:12)
목사님의 기도에 고개 숙여 아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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