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상투어 깨뜨리기 2013년 10월 08일
작성자 김기석

 상투어 깨뜨리기


세상은 말씀으로 빚어졌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의 장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빛이 생겼다. 언어는 없음과 있음을 매개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에너지로 가득 찬 말씀이다. 인간의 인간됨은 어쩌면 그 숨겨진 말씀을 해독하는 데서 빚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신 동물들을 아담 앞에 이끌어 왔을 때 아담은 그 동물들의 특성에 맞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각각의 대상을 깊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대상을 깊이 바라볼 때 사람은 누구나 그 존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자기 앞에 있는 낯선 존재를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면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터져나왔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이 최초로 만든 문장은 사랑의 찬가였다. 놀랍지 않은가? 언어는 이처럼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는 암시일까?


하지만 죄가 유입되면서 인간의 언어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랑의 언어는 자기 중심적인 변명의 언어가 되었고, 소통의 수단이던 언어는 불통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권력으로 변한 언어는 의미를 독점하려 할 뿐 아니라 차이를 불온시한다. 벽돌과 역청으로 빚어진 바벨탑이 그 상징이다.


클리셰, 문학에서 진부한 상투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는 서적을 인쇄할 때 사용하는 연판(鉛版)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판에 박은 문구'를 뜻한다. 클리셰는 문학 뿐만 아니라 일상언어 곳곳에 배어있다. 결혼식 인사말에서 흔히 듣는 '공사다망하신 데도 불구하고…'가 그러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복무하면서도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의 수사가 그러하다. 그러한 상투어가 발화될 때면 듣는 이들은 누구도 그 말에 깊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차피 빈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내적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말처럼 슬픈 말이 없다.


문제는 종교적인 언어이다. 설교단에서 매 주일 선포되는 말씀이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또한 성도들의 일상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그처럼 슬픈 일이 또 없을 것이다. 종교적 가치에 뿌리를 둔 '구원, 사랑, 화해, 용서, 자유, 섬김, 돌봄, 희생'이라는 단어가 이미 상투어로 변해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낡아버린 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듣고 마는 말, 그래서 우리 내면에 아무런 긴장도 일으키지 않는 말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1:21-22) 예수가 보인 말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교훈의 새로움? 뛰어난 언변? 아닐 것이다. 말과 존재의 틈 없는 일치야말로 그런 권위의 뿌리일 것이다. 예수는 상투어로 변해버린 율법의 언어를 깨뜨려 생명을 담지한 말로 빚어냈다. 오늘 목회자들의 과제가 있다면 상투어로 변해버린 종교적 언어를 우리의 일상 언어로 새롭게 번역하는 일이 아닐까? 새 신新 자는 서 있는 나무에 도끼를 기대놓은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살아있는 나무에 도끼날이 박힐 때의 그 생생한 아픔이 새로움이란 것일까? 그런 말씀을 듣지 못해 우리 삶은 속물적으로 변해간다.


"말씀을 기다리는데/잡음이 교신을 방해한다/들리는 메시지/받아 적으려고 하면/무의식 한구석에서 기생하던/바이러스들이 문장 속에 끼어들어/구문을 깨뜨린다/때로는 의식 속에서/완성된 메시지이려니 싶어도/살펴보면/부식된 파피루스 조각이어서/미처 못 찾은/다른 조각들 모래 속에서 찾아서/짜 맞추어야 하고/구멍 숭숭 뚫린/탈문脫文은 추측하여 메꾼다"(민영진, <설교 원고> 전문)


얼마나 정직한 고백인가? 구문을 깨뜨리는 바이러스도 많고, 미처 못 찾은 말씀의 조각들도 참 많다. 삶은 모호하고 인간의 인식은 파편적이다. 인식의 그 빈 자리는 단호한 삶의 지향으로 채워가는 수밖에 없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우리 가슴을 얼얼하게 만드는 참 말이 그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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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3 10-08 08:10)
삶과 말과의 공통부분을 넓혀가는 일에 마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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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4 05-04 06:05)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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