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바구니를 둘러 엎는 사람 2013년 09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바구니를 둘러 엎는 사람


한 아이가 시장에서 사과를 파는 여자가 물건을 진열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바구니의 윗부분에는 맛있게 생긴 잘 익은 사과를 얹어 놓았고 아랫부분은 설익은 것들로 채워놓았다. 그 광경을 보고 눈에 불이 켜진 아홉 살 짜리 소년은 바구니를 둘러 엎어 그 여자의 장사를 망쳐 놓았다. 여자는 화가 치밀어올라 욕을 해대며 아이를 때렸다. 아이는 욕설과 매질을 견뎠다.


이 용감한 아홉 살 짜리 소년은 나중에 19세기 유대교 갱신운동의 주역이 된 렙 메나헴 멘들이다. 사람들은 그가 폴란드의 코츠크에서 살았다 하여 코츠커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츠커는 한평생을 오직 '진리' 추구에 매진했다. 그에게 있어 진리란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거짓을 미워했다. 거짓은 사람의 영혼을 비루함 속에 유폐시키는 감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약함을 넘어 위대한 영혼을 지향할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진리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진리는 타협이 허락되지 않는 일종의 소환장인 것이다.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은 말한다. "속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 미칠 수 없는 기준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협, 핑계, 상호 조정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과연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 허무함, 이기심에 절은 모습을 보아낼 수 있겠는가?"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듯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참 삶의 길을 조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일상 속에서 늘 접하는 거짓에 대해 우리는 어지간히 무감각해졌다. '괜히 거짓의 맨 얼굴을 폭로하려다가 봉변당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포승줄처럼 우리를 묶고 있다. 어떠한 거짓과 위선에도 우리는 눈을 부릅뜨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기는커녕 짐짓 모른 체 하며 시선을 돌려버린다.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것들을 감추기 위해 잘 익은 견본이 사용될 때 언제라도 바구니를 둘러 엎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라는 시에서 자기의 비겁을 바닥까지 돌아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는, 설렁탕집 주인이나 돈 몇 십 원 받으려 몇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 등 무력한 사람들에게만 화를 내는 자기 모습을 가감없이 폭로한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의를 폭로하거나, 정의를 요구하는 일 등 위험이 예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는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고 말한다. 아, 정서가 되어버린 옹졸함이라니. 참 아프다. 위대한 영혼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아픈 반성 끝에 그는 자조적으로 노래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이 시의 독자들은 마치 거울을 통해 보듯 자기 자신을 실상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옹졸하고 비겁한 자기 모습을 숨기기 위해 우리가 동원하곤 하는 교양의 가리개는 이미 벗겨지고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될 때 인간의 존엄은 스러지고 만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이 하나 둘 돈의 전능함이라는 허구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순간,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방법을 알아차리는 순간, 자유와 진리에의 열정이 회복되는 순간, 우리를 휘몰아가던 그 맹목적인 열정은 잦아든다. 비로소 이웃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몸을 낮춘다. 바로 그때 참 사람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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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3 09-14 12:09)
바구니를 엎을때의 소란이 번거로워 모른척하는 일 업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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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3 11-14 08:1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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