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18 2013년 09월 06일
작성자 김기석

 

주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우리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실존의 어둠이 짙어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주님의 은총의 빛은 더욱 밝아집니다. "내 맘 속을 비추시는 주님, 어둠에서 나를 지켜 주소서. 내 맘 속을 비추시는 주님, 당신 사랑 안에 쉬리라". 낯익은 가락을 읊조리는 동안 마음은 고요해지고 알 수 없는 온기가 마음에 번져갑니다. 주님 덕분에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여전히 현실은 무겁고 힘겨워 비틀걸음으로 걷는 우리들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니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거짓과 위선이 판치고, 불의한 이들이 언죽번죽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임을 믿습니다. 불의를 불의로 폭로했던 세례자 요한의 용기와,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7월 한 달 내내 주님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7/3)

 

주님, 무더운 날에도 담쟁이는 보이지 않는 보폭으로 담장을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아스라한 저 수직의 중심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도 치열하게 오르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 끝없는 오름은 벽을 단단히 움켜잡는 그 미세한 뿌리들로 인해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가끔 삶이 힘겹다고 투덜거립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담쟁이의 저 가뭇없는 전진이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라고 있다고 가르쳐주신 주님, 세상이 어둡다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게 해주시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가 묵은 땅을 갈아엎으면 주님께서 친히 정의를 비처럼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떠한 방해가 있더라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순례를 그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7/10)

 

주님, 이 무더운 여름을 건너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 재난은 늘 힘겹게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먼저 찾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량진 배수지 수몰 참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하늘이 무너진듯 슬픔과 절망의 심연으로 떠밀리는 그 가족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주님, 언제까지나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합니까? 생명보다 돈을, 안전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이 전도된 세계를 다시금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헛된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꺼이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며 살게 해주십시오. 또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을 마치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양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기쁘게 주님을 바라보고, 아프게 주님의 도움을 청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골몰하게 해주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아멘. (7/17)

 

주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복음서의 말씀을 곱씹는 나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말씀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깊은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나날입니다. 옳습니다. 말은 분명 사건을 일으킵니다. 일으키는 말, 세우는 말, 북돋는 말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헐뜯고, 비꼬고, 무너뜨리려는 말들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리당략을 위해 발설되는 정치인들의 말, 사람들의 영혼을 쥐락펴락하는 종교인들의 말,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당도하지 못하기에 거리를 떠돌고 있는 말들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 잠시 입을 다물고 가슴 깊이 침묵을 채우고 싶습니다. 오직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주님, 이제부터 우리가 하는 말이 주님의 말씀을 닮게 해주십시오. 아멘. (7/24)

 

주님,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는 새처럼 갈급한 심정이 되어 주님을 앙망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계절의 은총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십시오. 하루하루의 점철이 인생임을 알면서도 오늘을 한껏 살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과 게으름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은 옛 삶을 떠나라 이르시지만 안일함에 길들여진 우리는 좀처럼 떠나지 못합니다. 삶이 권태롭다고 말하면서도 순례자가 되기를 거절합니다. 주님을 닮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주님이 걸으신 길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습성이 된 이러한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문득 제 정신이 들어 아버지 집을 향해 길을 떠났던 탕자처럼 저희에게도 그런 자각의 순간이 속히 오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그 기쁨으로 세상의 온갖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해주십시오. 아멘. (7/31)

 

주님, 광복절이 다가옵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로 살았던 35년의 세월, 나라가 없기에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던 인고의 세월, 모두가 지쳐 있던 그 때 해방은 도둑처럼 급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해방의 감격은 짧았고 이후 분단의 아픔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기를 소망했던 히브리 시인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남과 북으로 갈라진지 68년,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희년의 나팔은 이미 울렸건만 아직 우리의 종살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비록 어렵다 해도 끈질기게 평화를 선택하는 거룩한 바보들이 많아지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가르는 모든 담을 무너뜨리심으로 평화의 왕이 되셨던 주님을 우리도 닮게 해주십시오. 아멘. (8/7)

 

주님, 말복을 지나면서 바람의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무덥지만 아침 저녁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느른해졌던 몸과 마음을 곧추세웁니다. 문득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던 아담과 하와가 떠오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 파묻혀 사느라 주님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어느 결에 몸과 마음에 배어든 죄의 습성이 우리 눈을 가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지 못하고 삽니다. 주님, 이제는 그릇된 허장성세를 버리고, 주님 안에서 무르익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아 검푸르게 익어가는 포도송이처럼, 우리도 그렇게 향내를 머금은 참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세상 도처에서 지금 울고 있는 이들의 위로가 되어 주시고, 갈 바를 몰라 방황하는 이들의 길이 되어 주십시오. 아멘. (8/14)

 

주님, 허위단심으로 건너던 여름날이 이제는 물러가는 것인가요? 처서를 지나면서 마치 눅진해진 이불을 널어 말리듯이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 내놓습니다. 주님의 은총의 햇살로, 주님의 생기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즐겁고 기쁜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 도처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우리 마음을 옥죕니다.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며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든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경청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참극은 언제나 그치게 될는지요? 주님, 모두가 샬롬을 누리는 세상, 모든 생명이 각자에게 품부된 삶의 몫을 온전히 누리는 세상을 속히 열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지켜주십시오. 땅 위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기도로 들으시는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멘. (8/21)

 

주님, 9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아서인지 매미 소리는 더욱 처연하고, 기세좋게 푸르던 나뭇잎은 그 빛이 한풀 꺾인 듯 쓸쓸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리를 걷는 이웃들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이제는 여름내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짜증과 불쾌감을 떨쳐버리고, 마음껏 생을 경축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주님, 계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어둠 속에 유폐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속고, 시대에 지치고, 자기 무게에 짓눌린 채 사느라 낯빛이 어두워진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우리 시대의 땅 끝에 서서 절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 곁에 다가가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랑과 용기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해 주시고, 그 명령을 수행할 내적 힘을 더하여 주십시오. 아멘.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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