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바늘로 우물을 파는 참 바보 2013년 08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바늘로 우물을 파는 참 바보


문학비평가 황현산 선생이 낸 생애 최초의 산문집에는 '30만원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글이 들어있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시인은 한 달에 얼마를 버는가 물었다. 얄궂은 질문이지만 답을 피할 수 없어서, 시인마다 다르지만 어떤 시인은 시도 쓰고 길지 않은 산문도 써서 한 달에 평균 30만 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선생은 뒤늦게 자신의 대답이 달랐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 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 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시인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인이 가난하지만 구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비루함을 넘어선 '다른 세계'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세계를 뭐라 일컬어야 할까? 삶의 깊이라 할까, 이면이라 할까?


옛 사람은 본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세계,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세계야말로 모든 생명의 뿌리라고 했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그것을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고 노래했다. 하지만 그 은미한 세계는 오늘날 철저히 가리워져 있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춰볼 수 없는 것처럼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이들이 그 세계와 접속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종교는 질주하는 욕망에 대한 멈춤 신호여야 하고, 조각난 시간에 통전성을 부여해주는 성소여야 하고, 욕망에 부푼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렌즈여야 하지만 오늘의 종교는 그런 역할에 무능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교회는 그 세계와 접속을 유지하고 있는가? 외올실로 이어졌던 그 아슬아슬한 연결이 끊어지려는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크기의 신화가 거룩함이라는 지향을 대체한 후 교회는 더 이상 다른 세계에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의 교회는 시인으로 하여금 30만 원으로도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든든함과 넉넉함을 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추문거리가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상호금융권에 대한 감사를 벌이다 보니 교회에 대출해 준 돈이 4조9천억 원에 이른다 한다. 제1금융권이 대출해 준 4조원을 합하면 거의 10조에 이른다. 교회가 매달 금융권에 이자로 갚아야 하는 돈이 600억 원이라 하니,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무색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 되랬더니 세상의 빚이 되었다며 비아냥거린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탄식하는 이들이 많다. '어쩌다'라는 단어는 문제로 떠오른 사안에 대해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내기 위해 차용되곤 한다. 그래도 굳이 '어쩌다'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본질은 버리고 비본질을 취한 결과라고 말이다. 풍족함이나 편리함에 중독된 이들은 참 삶의 호출을 한사코 외면한다. 잘 구획되고 정비된 도시 공간은 세련되고 시원해 보이지만 사실은 비인간적인 공간일 때가 많다. 이질적인 타자들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횡단적 교섭을 통해 발생하는 삶의 이야기가 사라진 곳을 지배하는 것은 연봉과 주택의 넓이 그리고 자동차 배기량 등의 숫자일 뿐이다. 교회가 그런 곳이어서는 안 된다. 건물이 비록 낡고 비좁다 해도 그곳에서 빚어지는 삶의 이야기는 풍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굽을 벗어난 탈출 공동체가 신을 만났던 회막을 누가 감히 초라하다 하겠는가. 깔밋한 공간 속에서 복닥거리면서도 다른 세계를 꿈꾸며 살기에 당당한 이들이 나와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자기의 소설쓰기를 바늘로 우물 파듯 인내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우리 앞에 있는 저 거대한 탐욕의 바위를 파 생수가 돋아나는 우물을 만들기 위해 바늘 하나를 가지고 나서는 참 바보들이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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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3 08-12 09:08)
주의일 한다고 바빠서 주님께 안겨있을 시간이 없는 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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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13 09-21 07:09)
우물을 바늘로 파는 참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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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3 10-28 09:1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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