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17 2013년 06월 26일
작성자 김기석

자비로우신 하나님,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벙그러진 목련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의 발간 얼굴이 참 곱습니다. 조금씩 푸른 빛을 더해가는 산야가 넉넉해 보입니다. 주님, 어둡고 음습한 우리 마음에도 봄 햇살처럼 싱그러운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굳은 살과 같던 마음을 도려내주시고, 새 살과 같은 마음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뜨면 세상에 말씀 아닌 것이 없다고 말했던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은 나날입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는 여전히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날마다 불화와 갈등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남과 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참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용기도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4/3)

 

자비로우신 하나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히브리 시인의 노래를 자꾸만 되뇌게 되는 나날입니다.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이 겨레가 또 다시 긴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겨레붙이들이 또 다시 흘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 간절히 청합니다. 생명을 거역하고, 정의를 조롱하고, 평화를 짓밟으려는 이들의 계획을 무산시켜 주십시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잡은 채 반역을 꾀하는 이들을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가련한 이 민족 위에 드리운 진노의 팔을 거두어 주십시오. 남과 북 사이에 드리운 불신의 장벽을 허물어 주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켜 주십시오. 이 민족이 입고 있는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게 해주십시오. 평화의 주님, 오늘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날카로운 것들을 녹여주십시오. 아멘. (4/10)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람들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들로 산으로 내달리는 나날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봄신명에 지펴 노래라도 부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생명과 평화의 노래는 세상의 암울한 소식에 끊기기 일쑤입니다. 주님은 속에 품은 것을 밖으로 내놓게 마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아무리 척박해도 때 되면 꽃을 피워내는 나무들이 부럽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쳤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화부터 냅니다.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비명부터 지르곤 합니다. 마른 뼈의 골짜기는 바로 우리들 사이에 있습니다. 봄꽃들을 깨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우리 속에 불어넣어 주십시오. 하늘 군대가 되어 이 땅을 사로잡은 어둠의 기운을 몰아내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던 예수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17)

 

자비로우신 하나님, 꽃비가 내린 후 연초록 세상이 열렸습니다. 돋아나는 신록이 어찌 그리 고운지 모르겠습니다. 그 고운 빛깔에 마음을 두노라면 마음조차 절로 푸르러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모듬살이가 빚어내는 갈등상황에 지쳤던 마음이 치유됨을 느낍니다. 주님, 눈을 들어 산을 본다고 노래했던 히브리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주님, 눈앞의 일만 바라보며 사는 우리의 시선을 확장해 주십시오. 장막 안에서 근심하고 있던 아브라함을 밖으로 인도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셨던 그 손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지금도 세상에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품은 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님, 그늘진 곳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벗이 되어줄 용기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를 통해 주님의 꿈인 샬롬의 세상을 열어주십시오. 아멘. (4/24)

 

참 좋으신 하나님, 운동장에서 마구 내닫는 아이들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봅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거운 짐을 다 벗어던지고 겅중겅중 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문득 순수함을 잃어버린 우리 삶의 누추함이 아프게 자각됩니다.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로 인해 늘 애를 태우며 사는 우리입니다.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마음에 드리운 그늘은 더욱 깊어갑니다. 주님,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나 어울림의 한 세상을 열고는, 미련 없이 떨어져 열매에게 자리를 내주는 꽃의 자유로움을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삶이 무거운 것은 어쩌면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 이제는 내려놓을 것은 과감히 내려놓고, 붙잡을 것은 든든히 붙잡아, 주님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나날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5/1)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기 원하지만 삶은 늘 무겁습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생의 결실은 적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도 있고, 비애가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행복은 추구할수록 점점 멀리 달아나곤 합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항해하듯 우리 삶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하지만 주님, 삶에 멀미를 하다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부족한 것만 헤아릴 때 삶은 고통이지만, 이미 주어진 것을 헤아려보니 삶은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벗들의 사랑...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비틀거릴망정 산 자의 땅에서 살아갑니다. 주님, 이제는 받을 사랑만 헤아리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의 시린 마음을 덥썩 보듬어 안을 줄 아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5/8)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름다운 성령강림주일 아침입니다. 당혹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골방에 모여 하늘만 바라보며 애태웠을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은 에스겔이 보았던 골짜기의 해골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이 불꽃처럼 임하자, 그들은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광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죽임을 당한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일어선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박해조차 그들을 주저앉힐 수 없었습니다. 주님, 삶에 지쳐 땅에 붙박인 듯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님의 영을 보내주십시오. ‘갑을관계’로 요약되는 오늘의 사회를 향해 사랑과 돌봄과 나눔과 관용이 생명의 길이라고 외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우리에게 좋은 생각을 주시며, 그 생각을 삶으로 번역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5/15)

 

자비로우신 하나님,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습니다. 이팝나무 꽃그늘 아래를 걷노라면 시름조차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새로운 걱정거리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사느라 우리 영혼은 오갈들고 말았습니다. 온전히 맡기지 못한 탓인지 우리 삶의 무게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훨훨 날고 싶지만 욕망의 중력이 우리를 확고하게 잡아챕니다. 주님, 욕망의 경주를 하느라 지쳤으면서도 선뜻 멈추지 못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깊은 친밀함 속에서 하나됨의 신비를 보여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나뉘고, 찢기고, 버성기기만 하는 우리들의 관계 속에 와주십시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서로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고, 오순도순 살아갈 새 마음을 창조해주십시오. 아멘. (5/22)

 

자비로우신 하나님, 더 나은 삶을 희구하면서도 늘 제 자리만 맴돌곤 하는 우리들입니다. 햇빛을 머금어 붉게 익어가는 앵두를 보며 우리 마음도 그렇게 아름답게 물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익은 생각과 행동으로 하나님과 이웃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기 일쑤인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사과 한 알을 베어물면 시원하고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목마른 누군가가 다가올 때 그런 향기와 맛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6월이 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으로 먼저 통증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분단이 만들어놓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고난의 세월을 이렇게 허비할 수만은 없습니다. 주님, 마른 뼈의 골짜기 같은 이 땅에 주님의 생기를 보내주셔서 평화의 새 역사를 시작할 용기를 내게 해주십시오. 아멘.(5/29)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을 향한 순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상의 번잡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분산된 우리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바람에 일렁이다가도 기어코 몸을 곧추세우는 촛불을 닮고 싶습니다. 상한 갈대로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집어등 불빛을 보고 몰려두는 오징어떼처럼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속절없이 끌려갑니다. 이제는 그 인공의 불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숨겨두신 그 은은한 참 빛을 따라 가게 해주십시오. 또한 세상 모든 것 속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십시오. 이 한 주간도 주님으로 인해 우리 삶이 든든하게 해주십시오. 아멘.(6/5)

 

주님, 비 내리는 날 뒷짐 지듯 삽을 멘 채 논배미를 천천히 걸어가는 늙은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의 허리는 굽어 있었습니다. 흙과 더불어 살아 흙을 닮은 듯 그의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문득 거룩함이 떠올랐습니다.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서 문득 하늘을 본 듯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늘 그 자리에서 땀흘리며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주님, 세상 길을 걷느라 우리는 지쳤습니다. 숨이 가빠옵니다. 이러면 안 되지, 안 되지 하면서도 습관처럼 발걸음을 빨리 하며 삽니다. 그 분주함이 우리에게서 안식을 빼앗아 갑니다. 내적인 빈곤으로 인해 우리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뭔가를 향해 돌진합니다. 풀꽃 한 송이 속에서도 하늘을 보셨던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 이 메마른 땅을 걸어가는 우리의 그늘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 잠시 머물다 갈 시원한 그늘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6/12)

 

주님, 세상 도처에서 들려오는 분쟁의 소식 때문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지구촌 저편 어딘가에서 테러로 인해 수십 명이 죽었다는 보도조차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작은 아픔에도 비명을 질러대는 우리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지며 오순도순 살라고 하셨건만 우리는 공존의 지혜를 저버린 채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63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그 뱀의 혀처럼 징그럽던 전쟁을 기억합니다. 아직도 그 상흔은 우리 산하,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과 북은 여전히 적대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분단체제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들을 물리쳐주시고, 어떤 경우에라도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6/19)

 

주님, 벌써 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문득 ‘속절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열심히 아름답게 살려고 애썼지만 우리는 여전히 옛사람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철에 밭을 갈지 않은 농부처럼 우리는 허망함만 추수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라 하신 이웃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을 길어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주님, 소중한 생을 허비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제는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욕을 공익으로 치장하는 이들로 인해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떠하든 평화의 길, 생명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보이지 않는 보폭으로 담장을 기어올라 마침내 담장을 초록으로 뒤덮어버리는 저 덩굴식물들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향해 길 떠나는 순례자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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