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14 2012년 11월 21일
작성자 김기석

자비로우신 하나님, 마을 길 벚나무 위로 가을빛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을 보며 허영을 부리지 않는 나무가 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의 향기를 머금고 싶습니다. 욕망의 파도에 떠밀리며 살다보니 우리 영혼이 남루해졌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문득 서러움을 느낍니다. 주님, 이제는 욕망충족을 위해 질주하던 삶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 거칠던 숨결 가지런해지고, 날카롭던 표정 부드러워져,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이 마음 편히 다가와 쉬었다 갈 만한 품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누군가가 하나님께 바친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 사람들 앞에 놓인 걸림돌을 치워주고, 비틀거리는 이의 어깨를 부축하여 일으켜주는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10/3)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아무리 살아도 삶의 의미가 확연하게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틀에 박힌 일상의 일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삶은 그만큼 진부해지고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한껏 살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은 '당신은 행동에 의해서만 파악되고, 손으로만 밝혀진다'고 노래했습니다. 삶의 의미는 그렇게 구성된다는 뜻이겠지요? 주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의 모습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십니까?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주님은 늘 세상의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셨건만, 우리는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찬양하나, 우리의 손과 발은 주님의 십자가를 저만치 밀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자리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든 줄곧 주님의 마음을 향한 순례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10/10)

 

자비로우신 하나님, 맑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갈대들이 마치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삶에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되던 일들이 하찮기 그지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우리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일들도 다 기억의 뒤안길로 물러갔습니다. 불멸을 구하면서도 우리는 늘 소멸하는 것들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말씀하셨던 주님의 확신, 그 당당함을 우리도 누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염려와 근심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를 건져 반석 위에 세워주십시오. 덧거친 일상 속에서 한숨만 내쉬지 말게 해주시고, 그 속에서 거룩하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저 단풍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총으로 아름답게 무르익어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10/17)

 

자비로우신 하나님,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을 정화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변한 것을 보며, 주님은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셨습니다. 오늘의 교회를 보시며 주님께서 얼마나 참담해 하실까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초월적 비전을 통해 세상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병든 교회를 염려하는 판국입니다.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은 많지만, 고백을 온전히 삶으로 번역해내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불어넣어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손해를 보고, 또 고난을 받는 일조차 꺼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길이십니다. 아멘. (10/24)

 

자비로우신 하나님, 무성했던 나뭇잎들을 떨구고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나무를 봅니다. 가야 할 때를 알아 가쁜하게 허공 중에 몸을 던지는 저 나뭇잎의 홀가분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삶의 근본을 붙잡지 못한 사람일수록 자기를 치장하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권위를 진리로 삼았지만, 예수님은 진리를 권위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일쑤 바리새파의 길을 걷습니다. 그 때문인지 삶은 늘 위태롭고 무겁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운 옛사람의 습성을 벗어버리고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순례자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단출하게 인생길을 걷고 싶습니다. 주님,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죄짓는 것만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하여 직립한 나무처럼 든든하게 서게 해주십시오. 아멘. (10/31)

 

자비로우신 하나님, 늦가을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나날입니다. 모든 때를 아름답게 만드신 주님의 은총 앞에 고요히 머리를 숙입니다. 참 소중한 시간을 소중한 줄도 모르고 허비하던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등지며 살았던 우리입니다. 이제는 돌이켜 하나님을 마주보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자신을 사랑의 빚진 자로 여기며 살았던 사도들처럼 우리도 값없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평화의 노래가 울려나오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숨결이 머무는 곳마다 생명의 꽃들이 피어나게 해주십시오. 미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주셔서, 하나님의 뜻 앞에 먼저 엎드릴 수 있는 겸허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11/7)

 

자비로우신 하나님, 별빛에 몸을 씻고 차가운 바람으로 영혼을 씻고 싶은 나날입니다. 왜 이리 헐떡이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을 볼 때마다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풍경이 떠올라 스산해집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오히려 예수의 길에서 멀리 달아나고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하며 지나쳤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아이의 시린 손을 잡아 호호 불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가슴 시린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마음 따뜻한 사람을 기다립니다. 그의 이름을 호명해 줄 이를 기다립니다. 우리 눈을 여시어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워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11/14)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순절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 삶의 자취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허위단심으로 걷는 동안 주님은 은총의 날개로 품어 안아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마음은 스산합니다. 아니, 참담합니다. 저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진 참극 때문입니다. 무차별 공습으로 인해 무고한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죽어갔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이 그렇게 속절없이 스러졌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무색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소원하지만 전쟁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 엎드려 비오니 전쟁을 기획하는 이들과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의 시도를 물리쳐 주십시오. 그리고 평화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십시오. 아멘.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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