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어떤 부흥을 꿈꾸는가? 2012년 05월 17일
작성자 김기석

어떤 부흥을 꿈꾸는가?

 

가끔 “목사님은 교회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계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질문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일까? 교회를 어떻게 부흥시키고,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교인들을 동력화할 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사용하는 개념에 대해 공감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부흥이라는 기표는 발화자에 따라 서로 얼마든지 다른 뜻으로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흥이라는 말이 교인수를 늘리고 경상비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부흥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수적 성장은 교인들의 복음적 삶의 결과일 수는 있지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오늘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본本과 말末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번영의 신학을 주입할 때 예수 정신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린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종교적 가르침에 바탕을 둔 각종 차별로 인해 왜곡되고 움츠러들고 짓눌리고 있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던 예수, 비록 가난하다 해도 서로의 시린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벗들이 있는 한 삶이 축제가 될 수도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던 예수, 비둘기처럼 순결하지만 뱀처럼 지혜롭게 세상의 어둠과 싸웠던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하시던 예수가 지금 남산에 오르신다면, 그리고 어둠이 내리는 서울 하늘 아래 곳곳에 밝혀지는 붉은 십자가 네온을 바라보며 뭐라 하실까? ‘아, 참 좋다. 나를 기리는 이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아무래도 그러실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회칠한 무덤이여!’ 하고 탄식하시지 않을까? 망양지탄亡羊之歎의 심정이요, 유구무언일 따름이다. 쇠북을 두드리듯 우리 양심을 세차게 뒤흔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23:15)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예수 정신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저마다 풍요와 독점과 지배를 추구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청빈과 나눔과 섬김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교회는 비로소 살아있는 공동체가 된다. 예수의 길은 지금도 패자의 길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의 길은 자기 증여의 길이지 자기 확대의 길은 아니지 않은가? 이 어리석은 꿈에 사로잡힌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교회 부흥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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