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청파 햇빛 발전소 2012년 05월 17일
작성자 김기석

청파 햇빛 발전소

 

1990년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최한 제1회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대회'에 참석한 이후 생태적인 삶으로 개종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마땅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대회가 내놓은 문서와 신학적 확언들을 여러 차례 정독하면서 내가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고 작정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가급적이면 비행기를 타지 말 것, 육식을 줄이거나 끊을 것….

목회 현장으로 들어와서도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명제를 놓을 수 없었다. 교우들을 설득해 교회의 담장을 허문 자리에 살피꽃밭을 만들고, 음식물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캠페인을 하고, 농도생협과 협력하면서 밥상의 혁명을 이루기 시작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재활용품을 모으는 일도 했다. 이런 생활실천 운동도 참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이상의 어떤 상징적인 몸짓이 필요했다.

그 즈음 만난 것이 프란츠 알트의 <생태주의자 예수>였다. 그는 하늘 아버지의 창조세계를 끝없이 신뢰했던 예수를 가리켜 '생태적 예수'라 불렀다. 그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우리들 속에 있는 신적인 것에 대해 더 깊은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서 그들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사랑 없음에 굴하지 않고 사랑하기, 희망 없음에 꺾이지 않고 계속 희망하기, 모든 불신을 거슬러 신뢰하기, 모든 파괴에 맞서 창조질서의 보존을 위해 함께 일하기".

공감하며 책을 읽어가다가 독일의 작은 도시 쇤아우와 만나게 되었다. 만남이라 말하는 것은 그것이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6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도시 쇤아우의 주민들은 에너지 독점세력에 맞서 에너지 독립을 이루자는 데 합의했다. 그들은 엄청난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자기들의 목표를 착실하게 이루어냈다. 주민들은 그 도시의 교회당 지붕에 세워진 햇빛 발전소를 "쇤아우의 '창조질서의 창문'"이라고 불렀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교회 지붕에 햇빛 발전소를 세우자는 꿈이 내 속에 들어왔다. 마침 교회 설립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다는 상징으로 그보다 나은 일은 없어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해하던 교인들도 담임목사의 의지에 따라주었다. 마침내 교회 지붕에 3KW/H의 햇빛발전소가 세워졌고, 그 아래에는 우리의 신앙고백문을 적었다. "우리는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믿기에 여기에 청파햇빛발전소를 세웁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많은 이들이 우리 햇빛발전소를 견학하고 돌아갔고, 그 결실로 여러 교회 지붕에 햇빛발전소가 세워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의 신화는 허구임이 드러났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책임이라면 교회도 에너지 독립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도 전국에 있는 교회 지붕에 햇빛발전소가 들어서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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