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독서 모임 2012년 05월 17일
작성자 김기석

독서 모임

 

어느 한가로운 봄날 오후, 지하철 안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앞자리에 앉은 일곱 사람 모두 저마다의 일로 분주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있다는 것. 중년의 사내는 화면에 떠오르는 화투짝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젊은이는 무슨 게임을 하는지 손가락이 분주했다. 얼굴에는 순간순간 희로애락의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DMB로 연속극을 보고 있는 중년 여성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다소 오감스런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은 채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이도 있었다. 그들에게 그 공간에 있는 다른 이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묵시록적 풍경을 본 듯 정신이 아뜩해졌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지만, 가 닿아야 할 섬조차 없는 것 같았다. 마침 자리가 나서 앉았다. 아뜩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책을 펼쳤고, 나 또한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다. "물 냄새 맡고 달리는 사막의 약대처럼/스며든 빛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움 속의 새싹처럼". 지긋이 눈을 감고 함석헌 선생의 시구를 암송하다가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낯설고도 신선한 광경과 만났다. 내 앞에 선 젊은 여성이 펼쳐 든 책 제목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었다. 그것도 독일어 원서.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벗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홀로 싱긋 웃었다.

책을 읽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한다.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 혹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소비하는 이들은 더러 있지만, 자기 영혼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책들과 씨름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변화를 향해 자기를 개방한다는 것이 아닐까? 책은 거울이 되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게 하기도 한다.

꽤 오랫동안 교우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이어왔다. 젊은 교우들과 한 주일 혹은 두 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의도했던 것은 현실을 조망하는 다양한 창을 마련해주자는 것이었다. 참여한 이들에게 문학, 역사, 미학, 철학, 사회학, 신학, 평전 등의 다양한 책을 100권 이상 읽으면 삶이 새로워질 거라고 장담했다. 과연 그러했는지는 그들 각자가 삶으로 대답할 일이다. 숭실대 김회권 교수는 "독서를 한 사람은 뇌물을 포기할 수 있는 결단, 꽃뱀, 미인계를 이길 수 있는 결단에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과 만나는 순간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의 효용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창문 하나를 마련하는 심정으로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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