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일인 일 구좌 갖기 운동 2012년 05월 17일
작성자 김기석

일인 일 구좌 갖기 운동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말한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말한다." 1999년에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대주교 돔 헬더 까마라의 말이다. 구조의 문제는 이렇게 강고하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다 해도 억압적이다. 사람들의 욕망을 지배하는 유혹자인 동시에 안팎으로 억압하는 권력자이기도 하다. 그것이 '돈'(資)이 '말末' 아니라 '본本'인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어렵다. 이 뒤집힌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돈의 지배는 확고해진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들 말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환경, 복지, 노동 분야에 인간적 가치를 심기 위해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땀을 흘린다. 자기중심의 안일한 행복을 내려놓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는 십자가를 자랑하고 '이웃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기독교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에 이미 기독교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들은 온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구체적 이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단정적인가?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고 싶은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분명 세속의 예언자이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다. 거칠게 번역하자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수행할 때 비로소 교회라는 말이겠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꿈에 지펴 병든 사람을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 살았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어떠한가? 그런 예수를 찬양하고 기념한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워주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오늘 사방에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있다.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면 된다. 그리스도의 손과 발 노릇을 착실히 하면 된다는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사회복지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귀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자족하면 안 된다.

여러 해 전부터 우리 교회는 '일인 일 구좌 갖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인들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비영리단체 혹은 비정부기구의 후원자가 되자는 운동이다. 그 단체들이 하는 일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연대의 뜻으로 후원자가 되는 순간부터 그 단체가 하는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고, 때가 무르익으면 그 일에 몸으로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은 이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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