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봄은 어떻게 오는가? 2012년 04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봄은 어떻게 오는가?

 

밤에 한 어린 아이가 물이 먹고 싶다며 칭얼댄다. 꼭 갈증이 나서라기보다는 그냥 짜증이 났거나 부모의 관심을 끌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자 아버지는 내의 바람의 아이를 발코니로 끌고 가 세워두고는 문을 닫아걸었다. 그 체험이 예민한 아이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는 훗날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도 거인인 아버지께서, 즉 최종 심급인 아버지께서 별 이유 없이 나타나서 한밤중에 저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발코니로 데려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제가 아버지께 그처럼 가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운 상념이 되어 저를 괴롭혀왔던 것입니다.”

훗날 소설가가 된 그 아이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이다. 실존적 불안과 세상과의 불화의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카프카의 일화를 읽는 동안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희곡 <문밖에서>가 떠올랐다.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가치들이 속절없이 무너짐을 경험한 주인공 베크만, 그는 뭔가 확고하고 포근한 것을 찾아 헤매지만 자신이 언제나 ‘문밖에’ 서 있는 존재임을 아득하게 경험한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살란 말이야.” 그의 절규는 삶의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종작없이 떠돌던 젊은 날의 내 가슴에 전율이 되어 다가왔었다. 문밖에서 문 안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 소리가 소거된 세계 저편에서 나 없이도 평온한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것, 삶은 참 쓸쓸하다.

그래서인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목련꽃을 깨우기 위해 개똥지빠귀가 수선을 떠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여전히 문밖에 서있는 이들이 떠오른다.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 자신들의 부재를 당연시하는 세상을 향해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 경쟁과 효율성을 숭상하는 거대한 도시 문명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퇴장하는 이들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그런데 그들 곁으로 다가서는 한 사나이가 보인다. 짓밟히고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차갑고 파리한 손을 잡아 온기를 전해주던 그 사람 말이다. 그 또한 세상에서 버림받았었기에 버림받음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화려한 건물을 보며 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그분은 ‘나를 믿어 달라’고/요청하시는 것보다/내 속을 좀 알아 달라고 하십니다.” 어느 시인의 말이 가슴을 두드리는 시절이다. 혼자 자문해본다. ‘나는 누군가를 문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문밖에 선 사람들을 문 안으로 맞아들일 때다. 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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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2 04-08 06:04)
감사해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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