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10 2012년 03월 29일
작성자 김기석

자비로우신 하나님, 눈꽃을 이고 있는 나무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솜이불을 덮은 양 나무는 그렇게 혹독한 겨울 찬 바람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겨울 한 복판에 봄의 숨결을 숨겨놓으신 주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지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그들의 가슴에 봄바람과도 같은 주님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십시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 노동자들,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소년들, 가난한 이웃들,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가족들 모두의 엄부렁한 마음을 주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십시오. 주님, 이제는 우리가 봄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켜켜이 쌓인 어둠과 절망의 지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가슴에 일으키신 일렁임으로 시들어버린 생명을 깨우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2/1)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 앞에 설 때마다 우리의 하얀 손이 부끄럽습니다. 병자들을 어루만지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던 주님의 손을 닮고 싶지만, 우리는 주저주저하며 섬김의 자리에서 물러서곤 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주님이 예비하신 그 신비한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왕의 잔치에 초대 받았지만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았던 이들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주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십시오. 바람이 나뭇잎을 설레게 하듯이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를 흔들어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불필요한 것들을 줄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태만한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우리 앞에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한껏 기꺼워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2/8)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은택을 입히시는 하나님, 주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십니다. 여전히 추위가 남아 있지만 봄은 이미 저만치에 와 있습니다. 우수 절기를 맞이하니 마음이 절로 흥겹습니다. 주님의 생기를 우리 속에 불어넣어주십시오. 갈대 피리같은 우리 속에 주님의 숨결을 불어넣어 하늘의 가락으로 울려 퍼지게 해주십시오. 생명의 바람, 평화의 물결이 되어 이 불모의 세상을 조화의 꽃밭으로 바꾸게 해주십시오. 산상변화주일인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빛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 빛이 없어 우리는 지향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빛을 저 분쟁의 땅 시리아에도 비춰주십시오. 희망의 노래조차 부를 수 없어 기진한 사람들에게도 비춰주십시오. 주님, 세상이 제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있으라' 명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힘차게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2/15)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순절 순례의 여정에 나선 저희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주님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해주십시오. 덧거친 세상에 사는 동안 마치 군살처럼 덧붙여진 과도한 욕망을 이제는 자꾸 덜어내며 살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만 의지하여 판단하며 살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겸허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필요한 이들과 나누며 살라 주신 것을 홀로 독차지하며 살았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제는 나눔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의 발 앞에 놓인 걸림돌은 치우며 살게 해주시고, 외로운 이들이 홀로가 아님을 느끼도록 그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며 살게 해주십시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바람과 물과 햇빛과 나무와 꽃, 그리고 우리 이웃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알아뵐 수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십시오. 아멘.(2/22)

 

자비로우신 하나님, 봄의 초입에 서서 남녘에서 들려오는 꽃소식을 듣습니다.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편지’를 받은 듯 마음이 설렙니다. 동면에 들었던 개구리와 벌레들도 봄볕에 이끌려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이즈음, 설렘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처럼 저희도 주어진 시간을 정성을 다해 살아내고 싶습니다. 알몸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스스로 비어있지 않으면 어떤 새로운 것도 피워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에 속한 생각들을 자꾸만 덜어내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워놓은 장벽들을 무너뜨려 마침내 영혼의 봄을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가장 작은 이들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지금 세상 도처에서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의 설 땅이 되어 주십시오.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받는 우리가 그들의 설 땅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2/29)

 

자비로우신 하나님, 맑게 갠 하늘 저만치에 있는 산을 자꾸만 바라봅니다. 연둣빛이 조금씩 조금씩 나무를 타고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경이에 찬 눈으로 산을 바라보다가 얼핏 마음이 서러워졌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능욕 당하고 찢기는 산하의 슬픔이 되짚여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흐뭇하게 바라보셨던 세상은 지금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피조물의 신음 소리를 들을 귀를 열어 주십시오. 1년 전 바로 오늘, 동일본해에서 일어났던 지진해일로 죽어간 수많은 이들과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후쿠시마 원전의 공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아올리던 인간의 오만을 심판하셨던 주님, 우리의 무지와 불신앙을 꾸짖어 제 정신을 차리고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3/7)

 

자비로우신 하나님, 산수유와 생강나무에 노란 꽃이 돋아났습니다. 갈등으로 여념이 없는 인간사 따위는 아랑곳없이 때 되어 피어난 꽃들이 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개화의 날을 준비해온 그 성실함은, 작은 아픔에도 신음소리부터 내는 우리 삶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주님, 이 좋은 봄날 우리의 마음에도 은총의 햇살 한 줌 내려주십시오. 우리 마음에 내려앉은 욕망의 더께를 걷어내시어 가려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무겁고 울울한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삶이 은총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십시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슬피 우는 사람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지금도 십자가를 지고 저 아픔의 땅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뒤를 따라 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3/14)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까지 버렸던 제자들은 끝내 영광스러운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수난의 길이 될 것임을 세 번씩이나 예고했지만, 누구도 그 말의 무게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여리고 길가에 앉아 있던 바디매오는 주님을 만날 생각에 겉옷까지 버려두고 달려갔습니다. 그 절박함, 그 신실한 믿음이 결국 그의 눈에 빛을 돌려주었습니다. 주님, 사순절 순례길을 가면서도 우리 마음에 그런 절박함이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눈을 뜬 후 주저없이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던 그 열정이 없습니다. 이 땅 도처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저리도 처연한데, 우리 눈길은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인들에게만 쏠려 있습니다. 주님, 다시 한번 우리를 불러 당신의 현존 앞에 세워주십시오. 아멘.(3/21)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순절 순례 여정 끝에 마침내 종려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먼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왔지만, 우리 마음에 드리운 어둠은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주님께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섬기라, 나누라, 돌보라 일러주셨건만 옛 삶의 습성을 벗지 못한 채 욕망의 땅에서 바장이고 있습니다. 나귀를 타고 느릿느릿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지만, 주님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주님, 그 무거움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셨습니까? 주님, 우리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야말로 참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순례가 마침내 십자가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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