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이게 무슨 꽃이에요? 2012년 03월 25일
작성자 김기석

이게 무슨 꽃이에요?

 

예루살렘 성 안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시장하셨던 예수께서 나무에 다가갔지만 잎사귀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오달지지 못한 삶, 언거번거한 일상에 지쳐 허덕일 때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이 우렁우렁 가슴을 친다.

교회 마당가에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옮겨 심은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한번도 꽃을 피우진 못했다. 봄 되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돋아나는 초록빛 새 잎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척박한 도시에 이식되었으면서도 산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절벽 끝 허공에 비스듬히 누운 듯 어찔했던 것일까? 해마다 꽃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산수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 산수유에 어른거리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환의 시 <춘신春信>을 읊조리기도 했다.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이 대목에서는 제법 비장했다.

그런데 며칠 전 기적처럼 꽃 몇 송이가 돋아나왔다. 꽃이래야 겨우 여남은 개에 지나지 않지만 마치 한 소식 접한 구도자처럼 마음이 설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한 것인가? 요 며칠 마당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어김없이 그의 팔을 이끌어 산수유 앞으로 데려갔다. 잔약하긴 하지만 노란 꽃등처럼 예쁜 산수유 꽃을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산수유라고 대답해주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만이다. 볼품없는 꽃 몇 송이를 보고 웬 호들갑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다. 어쩌겠는가. 꽃을 피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그 나무가 고맙고 대견한 것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지구별에 와서 외로움을 느끼던 어린왕자는 어느 집 담장에 피어난 수천 송이의 장미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자기별에 있는 장미꽃이 유일한 것이라 믿었던 터라 충격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은빛 여우에게서 ‘길들인다’는 말을 배운 후 자기 장미꽃을 다시 바라본다. 그 장미꽃을 위해 물을 주고, 바람막이로 가려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허영심 많은 장미꽃이 투덜거리거나 자랑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마침내 어린왕자는 꽃을 위해 들인 정성과 시간 때문에 그 꽃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에 시간을 들이고 있는가? 우리에게 허여된 시간으로 꼭 품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삶의 풍경이다. 분주함에 쫓겨 마땅히 시간을 들여야 할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아, 발자국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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