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마음에 등불 하나 밝혀지면 2012년 03월 19일
작성자 김기석

마음에 등불 하나 밝혀지면


분주함이 신분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시대이다. 저녁이 되어 그날의 일들을 톺아보면 딱히 한 일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고 스산해진다. 진동한동 지내지만 의식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 시차로 말미암아 의식은 분열 일보직전이다.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규정했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이 과도할 정도로 자기를 몰아붙이고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스펙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회, 성과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소진되고 마모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만성적 피로, 우울증 등 신경성 질환의 증가이다.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있다.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눈을 뜨면 된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도깨비 소굴로 잡혀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지만 기력이 소진되어 포기하려는 찰나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도깨비가 황급히 달아났다는 것이다. 정신이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 옆에 피 묻은 싸리비가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다소 허한 결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절묘하다.

우리가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있는 대상이 겨우 싸리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된 때는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여명이 밝아오는 때였다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 아니 우리가 차마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마음에 등불 하나 밝혀지면 과도한 욕망에 바탕을 둔 행복의 꿈이 환상임을 깨닫게 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교우 한 분이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진급할 때가 되었는데, 진급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진급을 하면 이익 창출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회사의 논리에 저항할 가능성이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교회 전면에 붙어있는 배너에 새겨진 ‘생명’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들어온 후, 그는 이윤 창출이라는 자본의 욕망에 복무하던 삶에서 벗어났다.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을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그 가치를 구현하도록 연구자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시작한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회사 안에서 작은 혁명을 시작한 교우에게 뒤늦게나마 시편 한 구절을 읽어주고 싶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37: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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