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얼굴 하나 보러 왔지 2012년 02월 21일
작성자 김기석

얼굴 하나 보러 왔지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본다. 노선도를 살피는 이도 있고, 잠시 후 도착할 버스를 알리는 전광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도 있다. 퀭한 시선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이도 있고,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인 채 홀로 골똘한 이도 있다. 한결같이 피곤하고 무뚝뚝해 보인다.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어깨가 구부정하다. 시간의 무게일 터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어쩌면 동류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가슴에 슬픔의 지층 한 켜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시간의 켜마다 스며있는 기억으로 인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함석헌 선생이 <얼굴>이라는 시에서 한 말이 절로 되뇌어진다. “이 세상에 뭘 하러 왔던고? 참 얼굴 하나 보러 왔지.” 그런가? 그 얼굴을 보지 못해 우리 삶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가? “참 고운 얼굴이 없어?/하나도 없단 말이냐?/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애,/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가슴이 그저 시원한,/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나는 거룩과 마주한 적이 있다. 첫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간 병실에 아내는 고요히 누워 있었다. 그 긴 진통의 시간 동안 곁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힘겨운 시간을 견뎌준 데 대한 고마움을 담아 아내의 손을 가만히 쥐어주었다. 건네 오는 시선이 사뭇 고요했다. 얼핏 거룩함의 현존 앞에 선 듯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침대에는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온전히 자기를 내놓고 마침내 고요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다 내려놓은 채 오직 감사와 감격으로 현재와 마주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자기를 잊고 또 자기를 비운 이의 내면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그 빛은 태초의 빛과 조응하게 마련인가 보다.

수난의 어두운 골짜기를 걷기 전, 예수는 세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장엄한 광경은 제자들의 가슴에 들어가 등불이 되었다. 제 아무리 세찬 바람이라 해도 꺼뜨릴 수 없는, 제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 해도 환히 밝힐 수 있는. 하지만 그 고양된 순간은 지속될 수 없다. 그것은 어둠을 가르는 번갯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우리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일상은 늘 힘겹지만 그 빛과 만난 이의 얼굴에는 하늘빛이 고이게 마련이다. 오늘, 우리의 얼굴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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