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보름달이라는 기적 2012년 02월 08일
작성자 김기석

보름달이라는 기적

 

몸을 곱송그리게 하는 칼바람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입춘 절기 아닌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을 흐르는 눈석임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다사롭다. 서울시가 서울역 지하도에서 겨울을 나는 노숙인들을 위해 온돌을 깔았다는 훈훈한 소식까지 듣고 보니, 봄은 이렇게도 오는구나 싶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 아닌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몰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이 참 고맙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들려주는 프란체스코 이야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날 밤 프란체스코가 아시시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하늘 한가운데 떠 있었다. 온 세상이 마치 공중에 떠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유현하고 미묘한 절대와의 마주침이라고 할까, 프란체스코는 마치 기적에나 접한 듯 황홀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문밖으로 나와서 그 위대한 기적을 즐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교회로 달려가 종탑으로 올라갔고,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종을 울려댔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사람들은 불이라도 난 줄 알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교회로 달려갔다. 그들은 종탑 위에서 종을 치고 있는 프란체스코를 보고는 화가 나서 물었다. “도대체 왜 종을 치는 거요? 무슨 일이라도 났소?” 프란체스코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러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하늘에 떠 있는 저 달 좀 보시라고요!”

하늘에 떠 있는 기적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프란체스코에게는 낯설었던 것이다. 광인인가? 평범한 눈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다수는 늘 정상이고 소수는 비정상인가? 그럴 수 없다. 렘브란트는 ‘성자나 광인이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든 광인이 성자는 아니지만, 모든 성자는 어느 정도 광인처럼 보인다. 그 시대의 관습과 가치기준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

타락한 영혼의 특색은 도무지 경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천국의 주인인 까닭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세상을 ‘초월자의 암호’로 가득 찬 곳이라 했다. 그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의 스승은 난폭한 현실에 매여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눈 하나 얻지 못해 인생이 무겁다. 사회적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것도 타락이지만, 삶의 기적을 오늘 누리지 못하는 것 또한 타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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