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궂은 일을 즐겨 택하자 2012년 02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궂은일을 즐겨 택하자

 

열정적인 일단의 전도자들이 어느 도시에 들어가서 옷가게 앞에 자리를 잡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마침 그들 앞으로 헙수룩한 차림의 농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메노나이트 교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전도자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불문곡직하고 물었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댕돌같던 농부도 당황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질문 앞에 서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쭈뼛거리던 그는 전도자에게 펜과 종이를 빌려 십 여 명의 주소를 적어 내려갔다. 대개는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이었지만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이윽고 농부는 전도자에게 말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존재의 변화와 무관한 구원 체험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존재의 변화를 먼저 알아차리는 이들은 가까운 사람들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농부는 오히려 전도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는 이들은 많지만 삶이 고백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 또한 많다. 신앙생활이란 고백과 삶 사이의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그 불화와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보지만 몸과 마음에 밴 아비투스는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하신 말씀을 실감하며 산다.

몸과 마음에 밴 습속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몸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 영혼의 둔감함은 몸의 굼뜸과도 연결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묵묵히 감당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이슈마엘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말한다. “배에 오르면 난 결코 시중 받는 손님이나 선장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수고하는 선원으로 남을 것이다.” 위계질서의 보이지 않는 강요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일은 마음에 그림자를 남긴다. 반면 스스로 선택하여 하는 일은 기쁨을 남긴다.

로마 근교 수비아코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 정문에는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 ora et labora’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기도와 일이야말로 수도원 생활의 핵심인 것이다. 일의 리듬을 타고 하늘빛 고요함이 찾아들면 그 일의 현장은 가장 거룩한 성소가 된다. 나찌의 강제 수용소 출입문에는 ‘일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Arbeit macht frei’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럴싸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자유가 전제되지 않은 노동에는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신 분을 인생의 참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섬기는 일보다는 섬김 받은 일에 점점 익숙해졌다면 그것은 타락이다. 돌이킴의 시작은 궂은일을 즐겨 택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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