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아침은 어떻게 밝아오는가 2012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아침은 어떻게 밝아오는가?

 

오솔한 첫새벽 칼칼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이 해를 기다린다. 운해 저 너머에서 솟아오를 붉은 기적을 종종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시간을 새롭게 하고 싶은 염원 때문이다. 지난날의 삶이 실답지 못했음을 아프게 자각하기에 묵은 시간을 서둘러 떠나보내고 아직 비릿한 욕망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박두진의 ‘해'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꼭 정동진에 가거나 천왕봉에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해가 솟아야 하는 곳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하지 않던가. 그 어둠을 놔둔 채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새벽 미명이면 온 부족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르는 부족이 있었다 한다. 그들은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북을 치며 절을 올렸다. 그러다가 저 동녘 하늘이 벌겋게 물들며 해가 솟아오르면 신께서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고 감격하곤 했다.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 미래라는 시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물이다. 정말 어리석은 것은 주어진 시간을 함부로 허비하는 것이다.

작은 시냇가에 엎드려 번민의 밤을 지새우던 사람 야곱을 생각한다. 칠흑같이 어둔 밤, 그는 미구에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을 예감하며 떨고 있다. 복수를 맹세했던 형 에서의 땅에 들어서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날이 추운지 더운지, 배가 고픈지 부른지도 몰랐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억의 편린들 속에 간간히 비쳐지는 제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왔나?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손샅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흩어졌다. 그 빈 자리에 남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었다.

그 밤 야곱은 해체되었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 결국 ‘나’라는 것이 본래 없는 것임을 절감할 때 마침내 ‘어둔 밤’이 물러갔다. 야곱이 스러진 자리에 이스라엘이 피어났다. 브니엘에 해가 솟아올랐고 그는 마침내 그 두려워하던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새로운 시간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한 소리가 있다. ‘빛이 있으라.’ 그 소리에 공명하여 스스로 빛이 되려는 이들을 통해 아침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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