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성탄절 무렵 2011년 12월 25일
작성자 김기석

성탄절 무렵

 

양파에 매운 맛이 들려는지 성탄 무렵 칼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연말을 맞아 가뜩이나 엄부렁하던 마음이 더욱 움츠러든다. 빨간 방울 달린 모자를 쓴 아이들이 앙증맞은 율동과 함께 부르는 캐롤을 들으며 벙싯 웃어도 보지만 마음 한켠의 어둠은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다. 내면의 부실함을 가릴 옷자락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저 들 밖’, 엄동의 거리를 바장이는 이들의 설 땅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책감 또한 크다. 예배당 벽면에 달아놓은 저 휘황한 별빛으로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이 지극한 시대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 불기조차 없는 쪽방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일터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칼바람과 마주선 이들, 공부 못한다고 가난하다고 교육적인 배려조차 받지 못한 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과 그 가족에게 성탄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는 이들이 있다. 쇠 항아리를 둘러쓴 것 같이 암담한 세상에 틈을 만들고 그 속에 인간다움의 숨결을 불어넣는 이들 말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산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갓난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의 제유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아기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사실은 역설 중의 역설이다. 생명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세상의 꿈으로 오신 예수는 지금 품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있다. 상처입기 쉬운 존재, 폭력에 의해 언제든 유린될 수 있는 존재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보호자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오시는 분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아담의 창조’가 떠오른다. 하나님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 예수와 천사들을 외투자락으로 감싼 채 갓 창조된 아담에게 손을 뻗어 그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계신다. 반쯤 몸을 일으킨 아담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닿을락말락한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은 유한과 무한의 접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 긴장된 정지 속에서 창조가 일어난다. 예수,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뻗은 하나님의 손이다. 새 창조가 일어나려면 이제 우리가 그분을 향해 손을 내밀 차례이다.

가난한 마음과 결혼한 13세기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성탄절기에는 배고픈 이들이 배를 채우고, 황소와 당나귀도 여분의 건초를 얻어 우쭐거리고, 자매인 종달새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박하지만 거룩한 염원이다. 이 마음이 없어 세상이 어지럽다. 하지만 지금 제 살과 피를 녹여 새 날을 잉태하는 사람들이 우줄우줄 걸어오고 있다. 바야흐로 빛의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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