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느티나무를 닮은 할머니 2011년 12월 18일
작성자 김기석

느티나무를 닮은 할머니

 

인적이 드문 산간마을의 고택. 마당가에 수령이 족히 수 백 년은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그 원만하고 넉넉한 품을 마음으로 가늠하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 마치 풍경처럼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집에서 거두었음직한 푸성귀와 열매를 조금 벌여놓고 언제 올지 모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처럼 나타난 여행자들 앞에서도 할머니는 느티나무처럼 고요할 뿐, 찾아온 이들을 부르지도,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겨울 햇살처럼 싱그러운 고요가 내려앉은 안뜰을 천천히 걷는 동안 마음은 절로 평온해졌다. 정갈하게 비질된 마당을 내려다보니 주인의 성품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도 말소리도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한참을 머물다보니 선선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었다. 바람을 막으려 옷깃을 세운 채 고택을 돌아내려오는데, 할머니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 말을 건넸다. “할머니, 춥지 않으세요?” “많이 껴입고 와서 괜찮아요.” 냉이, 호박고지, 서리태, 은행. 그게 다였다. 형식적으로 가격을 묻고는 할머니의 물건을 구입했다. 어떻게든 할머니의 고단한 하루를 끝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연신 “이렇게 고마울 데가…” 하시며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할머니의 시린 등을 쓸어드리며 어서 들어가시라고 재촉했다.

주차장 저편 논배미에서 놀고 있는 강아지들과 닭 몇 마리에 눈길을 주다가, 차에 올라 조금 가다 보니 길을 따라 허리 굽은 그 할머니가 천천히 걷고 계셨다. 차를 세우고 할머니를 차에 모셨다. “아까 그분들이네” 하시더니 혼잣말처럼 “우리 집 은행은 해거리도 하지 않고 매년 열려 귀찮게 해요”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와 함께 늙어온 은행나무에 대한 대견함이 그렇게 표현된 것일까?

할머니를 내려드린 후에도 할머니의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자들의 고담준론도 반지빠른 이들의 교언영색도 이익에 발밭은 이들의 악다구니도 모르지만, 땅을 의지한 채 묵묵히 한평생을 살아온 이의 착한 마음과 접속되었다는 느꺼움 때문이었으리라. 할머니는 스스로 느티나무가 되어 가학적인 세상에서 사느라 지친 이들의 마음을 그렇게 품어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1000번이나 열렸다. 오뉴월의 뙤약볕과 겨울철 칼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20년을 이어온 거리 시위이다. 사죄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사죄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는 저 느티나무의 품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할머니들이 그 거리에 서 계셔야 하는가? 언뜻 그분들이 서계신 자리를 향해 걷고 있는 어느 분의 뒷모습을 본 듯도 하다.

목록편집삭제

정병철(12 01-24 07:01)
감사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