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외로움의 영토가 넓어질 때 2011년 12월 11일
작성자 김기석

외로움의 영토가 넓어질 때

 

바람받이에 선 채 홀로 겨울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나무 곁을 지나갈 때마다 동요 하나가 떠오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가슴 가득 외로움이 사무쳐온다. 명사 앞에 붙어 하나만으로 됨을 뜻하는 접두사 ‘외’가 들어간 단어가 새록새록 새겨진다. 외기러기, 외짝 신발, 외돌토리, 외톨밤. 가슴 한켠이 싸해진다. 겨울이기에 이런 느낌이 더 강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지만 나도 몰래 남도 몰래 마음에 깃든 헛헛함을 채워줄 이들은 많지 않다. 따뜻함과 친밀함을 구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지만 우리가 일쑤 경험하는 것은 차가움과 버성김이다.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이 우리 앞에 서성거릴 때에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를 모른 척 할 때가 많다. 거부당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외로움과 격절감은 그만큼 깊어진다.

누구보다 맑은 시심으로 살다 간 시인 이성선을 기억한다. 그는 ‘다리’라는 시에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 둘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보이네/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참 심심한 풍경이다. 그런데 다음 연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이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이 시가 시가 되는 것은 마지막 연 때문이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시인의 마음이 읽히지 않는가?

우리가 외롭게 하는 게 어디 다리뿐이겠는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는 풍경도 사람도 외롭게 하며 재빨리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외로움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외로움의 영토는 점점 넓어진다. ‘나는 외롭다’고 외치는 것은 어린왕자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지친 가슴은 늘 겨울이다. 그 겨울에 봄을 가져가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의무이다.

지금도 맞아줄 가슴을 향해 떠돌고 있는 이가 있다. 그는 알몸을 포근하게 감싸줄 이불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 그를 환대하는 이들은 자기들이 맞이한 것이 하늘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우리 가슴에 숨어 있는 선의 희미한 가능성을 부드럽게 호명하고, 또 그 가능성에 숨을 불어넣는다. 증오와 무관심으로 깨뜨릴 수 없는 새로운 세계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분을 외롭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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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11 12-11 08:12)
목사님 글을 읽는 동안은 잠시 외로움도 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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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2 01-24 06:0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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