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문풍지가 된 사람들 2011년 12월 04일
작성자 김기석

문풍지가 된 사람들

 

길에 나서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종종걸음 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떤 조급함을 읽는다. 마음이 덩달아 스산해진다. 의식의 비어진 틈으로 스며드는 저 찬 바람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한 채 묵새기며 살아온 시간을 부끄러움으로 일깨워준다. 순간 마종기 시인의 <겨울기도>가 떠오른다. “하나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잊지 않게 하시고/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고마워하게 하소서.” 얼마나 고운 마음인가? 하지만 이 기도는 이불이 얇은 자를 찾아가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문풍지 우는 소리를 들으며 긴긴 겨울밤을 보냈던 때가 떠오른다. 창호문 틈으로 새드는 황소바람을 막으려고 붙여놓은 문풍지는 온몸으로 겨울바람을 견디며 그렇게 울고 있었다. 사랑방에 모인 아버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문밖으로 번져 나오고, 어린 자식들은 모두 아랫목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도 어머니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대접할 것 없으니 고구마라도 삶아야 했고, 행여 가축들 춥지 않을까 볏단을 깔아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문풍지가 되어 그렇게 겨울바람을 막아내고 계셨던 것이다.

어둑새벽 거리는 지난밤의 향락과 도취의 흔적들로 인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도시인의 말끔한 아침을 위해 야광천을 덧댄 옷을 입은 채 새벽거리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을 본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묵묵히 비질을 하는 그분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혼곤한 소비의 흔적들을 수거하기 위해 청소차에 매달린 채 달려가는 이들, 화려한 도시의 불빛 저편 어둠 속에서 몸을 옹송그린 채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을 돌보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을 본다. 절망의 황소바람에 맞서며 역사 속에 온기와 웃음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문풍지로 선 그들에게서 문득 거룩함의 온기를 느낀다.

교회 지붕에 설치한 햇빛발전소 수익금을 정산해본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은 햇빛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준 선물이다. 수익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묻자 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자 한다. 최소한의 난방조차 할 형편이 못되어 긴 겨울밤을 원망하며 지내는 이들의 시린 손을 잡아주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던가? 우정과 환대의 세상을 꿈꾸며 지금도 이 세상에 오고 계신 분, 그분은 지금 외로우시다. 언거번거하기만 하고 내실이 없는 신앙인들 때문에 세상이 더욱 춥다. 그분은 스스로 문풍지가 되기 위해 겨울 바람 앞에 서는 이들을 통해 이 땅에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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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11 12-05 09:12)
국민일보에 쓰시는 목사님의 글은 명칼럼입니다. 신문을 보면 제글 읽기전에 먼저 목사님 글을 읽습니다. 이렇게 글 잘쓰시는 목사님이 있을까 하여 청팍회르 찾았더니 이런 난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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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덕(11 12-09 10:12)
순우리말을 맛갈스럽게 구사하시는 목사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맑은 샘물을 마시는 듯
합니다. 수가성 여인이 마셨던 물맛도 다르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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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1 12-10 08:12)
감사합니다. 저도 문풍지가 되어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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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12 01-07 02:01)
윗분과 마찬가지로 저도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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