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어떤 세상을 기다리는가 2011년 11월 27일
작성자 김기석

어떤 세상을 기다리는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소녀가 초겨울녘 자꾸 창밖에 시선을 주는 것은 첫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시험에 응시한 이들은 합격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젊은 부부는 사랑의 열매로 주어진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손꼽으며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처럼 설렘을 동반한다. 설렘은 예기된 미래가 주는 선물이다.

기다림이 안타까움을 낳을 때도 있다. 안타까움은 지연된 미래가 빚어내는 그림자이다. 허난설헌은 허구한 날 집을 비우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이런 노래를 지었다. "옷상자에 간직한 비단 가위로 말랐어요./손가락을 호호 불며 겨울옷을 지었지요./등잔 그림자 가에 앉아 옥비녀 뽑아 들고/불똥을 발라내어 부나비를 구했지요." 눈에 선하다. 오시지 않는 님이 원망스럽지만 그를 기다리며 옷을 짓는다. 시린 것은 손가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인은 밝혀 놓은 등잔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에게서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본다. 그렇기에 옥비녀로 자꾸만 불똥을 발라내는 것이다.

교회력은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로부터 시작된다. '기다림'으로부터 시작되는 새해, 멋지지 않은가. 기다림은 오실 님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이지만, 그가 오실 길을 닦는다는 점에서는 능동적이다. 바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조신하게 거두어들이고,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드리운 마음을 깨끗이 닦아내 님에게 바치는 것이 옹근 기다림이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렸을까?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침은 주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오고야 말 미래, 즉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서의 미래였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폭력의 광기가 사라진 세상의 꿈, 억압과 차별이 사라진 세상의 꿈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오직 '가능성으로서 주어진 미래'이기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이들을 통해 온다.

한미 간의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통과되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혼돈에 휩싸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지만, 음울하기 이를 데 없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사회적 약자들의 살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세상을 기다리는가? 돈이 중심인 세상인가, 사람이 중심인 세상인가? 예수는 지금 당신의 몸이 되어줄 이들을 찾고 계시다.

목록편집삭제

내린천(11 11-27 09:11)
상위 1%를 위한 한미 FTA가 통과되었으니 우리 민초들은 이제 절망할 일만 남았네요.
가능성으로서 주어진 미래가 오긴 오는 걸까요....
해산의 고통을 감내할 이 시대의 성모마리아가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삭제
박찬덕(11 12-09 10:12)
사람사는 세상을 세우기 위한 수고와 헌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사람이
바로 제 자신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아멘!!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