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감탄사 속에서 보낸 하루 2011년 11월 07일
작성자 김기석

감탄사 속에서 보낸 하루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어르신들의 옷차림과 얼굴도 단풍처럼 물이 들었다. 차가 막 시내를 벗어나 추색이 완연한 산길에 접어들자 여기저기서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 단순한 감탄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노인들은 간 곳 없고 소년과 소녀들만 그 자리에 있었다. 이런 걱정 저런 근심 다 내려놓고 오직 감탄사로만 말하는 그 순간의 황홀! 감탄사에 잠겨 바라본 세상은 정다웠다. 그 순간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아름다운 서러움이 찾아왔다. 하나 둘 마른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나무를 보다가 문득 모시고 가는 어르신들의 지난했던 삶이 떠올랐던 것이다. 김현승은 <나무>라는 시에서 "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나의 지난날을 기도로 뉘우치면,/나무들도 저들의 빈손과 팔을 벌려/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고 노래했다. 이미 '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 세월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그렇듯 찬란한 감탄사를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만드신 새와 짐승을 아담 앞에 이끌어 온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성경을 좀 아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름을 지어 주라고'라고 대답한다. 성경은 아담이 그 동물들의 이름을 정해주었다고 전하니 그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랍비의 말에 더 끌린다. 그는 하나님이 동물을 아담 앞에 끌어온 것은 '함께 경탄하자는 초대'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이 공들여 만드신 작품에 놀라고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임을 넌지시 일깨워주고 있다. 

좋은 경치, 좋은 음식, 좋은 만남에 흔감해진 어르신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래잔치를 벌였다. 각자의 사연에 걸맞는 감성으로, 가급적이면 예쁘게 부르려고 애들 쓰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이런 노래는 어르신들을 유년시대로 데려갔다. 여러 해 전 죽을 고비를 넘겼던 원로 장로님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하고 노래했을 때는 모두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동했다. 중간에 가사도 잊고 음정도 흔들리고 템포도 엉망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운 노래들이었다. 추임새도 있었다. '산 빛 참 곱지?', '저 억새 좀 봐!', '물오리가 자맥질을 하네!' 감탄사 속에서 보낸 하루,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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