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무엇을 호명할 것인가 2011년 10월 26일
작성자 김기석

무엇을 호명할 것인가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아부 알리와 알라지 두 사람은 함께 사막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들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한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아부 알리가 알라지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 리더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내 말에 복종하겠습니까?” 알라지의 물음에 아부 알리는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라지는 사막에서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배낭에 넣고는 그것을 등에 짊어졌다. 당황한 아부 알리가 “그 짐은 제가 져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알라지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이 리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십시오.” 그들은 말없이 사막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 갔다. 마침내 사막에 어둠이 내리고 그들이 고단한 몸을 쉬려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심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알라지는 밤새도록 아부 알리의 머리맡에 앉아 자기 겉옷을 우산삼아 비를 가려주었다. 아부 알리는 알라지를 향해 ‘당신이 리더’라고 말했던 것을 후회했다.

수피즘에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떠오른 건 혼탁한 양상을 보이는 선거전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승리를 목표로 뛰는 선거전에서 자신이 적격자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이 적격자임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 후보의 흠결을 찾아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후보 검증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남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일념으로 모욕하고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모습은 우리 정치 문화의 미성숙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천둥처럼 귓전을 울린다.

만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깃든 내밀한 어둠과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예수의 눈길을 생각해본다. 못났다고 비웃지도 않고, 더럽다고 내치지도 않고, 약하다고 무시하지도 않는 눈길, 어머니의 품처럼 보드라운 그 눈길과 만난 사람들은 자기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는 또한 억세고 투박한 바다 사나이 시몬에게서 새 시대의 반석을 보고, 의가 사라진 시대에 상심하고 있던 나다나엘에게서 거짓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보았다. 예수의 호명에 따라 그들은 새 세상 주춧돌이 되었다. 세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무엇을 호명해내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오늘도 말로써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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